모 과
모 과
  • 하조나라
  • 승인 2008.10.23 09:14
  • 호수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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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산 색깔이 바뀌어가고 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백운산 색깔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확인하곤 한다.
싱싱한 청춘을 구가하던 산과 들은 이제는 차분한 자태로 물러나 앉으며 조금씩 빛바랜 옷을 벗기 시작한다.
이 때 쯤이면 산 어디를 가더라도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
노랗게 익은 감과 집 울타리를 둘러싸고 있는 탱자나무에도 향기로운 탱자가 많이 열렸다.
나무 위에 앉은 산새들은 제철을 만난 양 즐거운 노래를 한다.
그들도 가는 곳마다 풍성한 먹이를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

자연의 훌륭한 배경이 되는 가을 풍경이다.
둘러보면 땅 곳곳에 늘어진 밤도 많고 감도 많다.
육판골 산 입구에는 10 여 수 되는 커다란 모과나무가 버티고 서 있는데 올 해에는 엄청나게 많은 모과를 열었다.
매년 바람이 불면 우수수 떨어지던 과실이 올해에는 가지가 부러질 만큼 많이 달려있다.
그래도 땅에는 떨어진 모과로 노랗게 덮여있다.
그들을 주워 코끝에 갖다 대니 향이 그윽하다.
나무에 열린 과일들이 우뚝 하늘을 우르르는 가을 풍경이 참 좋다.
그들을 한 참 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마저 넉넉해지고 푸근해지는 하루다.

노랗게 익은 모과들이 땅에 떨어진 채 그대로 썩어가는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과실나무 관리를 제대로 했어야하는데 신참 농부는 그렇질 못했다.
집안 일이 바빠 짬을 낼 겨를도 없었고 게으르기도 해서 거름을 하거나 약을 치는 방법도 몰랐다.
그랬더니 모과에는 벌레들이 많이 생겼다.
그래도 농약 한 번 치지 않은 무공해 유기농 과일이라며 집사람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한다.
그래서 떨어진 모과를 줍기로 했다.

바구니에 가득 모과를 담고 가지치기를 하면서 땀을 흘렸더니 이내 시장기가 돈다.
집 사람과 함께 집에서 가져온 라면을 찌그러진 냄비에 끓이고 소주도 한잔 곁들여 식사를 한다.
산 속에서 먹는 라면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이 모두 내 것과 같다.
행복한 마음으로 나무에 올라가 모과를 따기도 하고 줍기도 했더니 차 트렁크에 가득 채울 만큼 많이 모였다.
덕분에 하조나라 가게 안에는 수많은 모과와 탱자, 잘 익은 감이 열린 가지가 구석구석에 진열 되어있다.
그 속에서도 가을 느끼며 과일의 진한 향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모과를 가져가라며 여러 개를 안겨주면 다들 좋아한다.
차안에 두면 차안 의 향기도 은은해질 것이다.
모과의 향기가 그윽해서 술이나 차를 만들면 아주 훌륭한 작품이 될 것 같다.
읍내에 나가 설탕을 사고 여러 박스의 소주도 샀다.
그 많은 모과를 일일이 잘게 썬 다음 설탕에 절이고 다시 술을 붓고 용기에 담는 작업을 이틀 꼬박 계속했다.

힘이 좀 들기는 했지만 세심하게 정성을 들이고 애를 썬 덕분에 모과를 담은 통이 12 개나 되었다.
통 속에 들어있는 모과는 숙성될 시간을 기다리며 한동안 잠을 자야 할 것이다.
일 년 뒤면 우리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향기로운 모과차나 모과주를 대접하는 기쁨도 맛볼 수 것이다.
모과의 향기처럼  우리의 인생도 향기 가득한 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여튼 올 해에는 제대로 된 가을을 맛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