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프라인, 광양과 광양신문
나의 하프라인, 광양과 광양신문
  • 하조나라 김세광, 복향옥 부부
  • 승인 2008.10.30 09:22
  • 호수 2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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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예초기 부속품을 사러 동양농기계대리점에 갔다가 “광양신문에 글 쓰시는 분이죠? 잘 읽고 있습니다” 하는 사장님의 인사말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쑥스럽기도 했지만 뭔가 실언은 하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그랬던 것 같다.
명재약국에 들렀을 때 약사님도 그랬고, 주일아침이면 매일시장 앞에서 가끔 뵙는 우리 시장님도, 성경책을 옆에 들고 가시면서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하셨다. 그때마다 늘 같은 생각과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때마다 부담감이 더해지곤 해서 고민하기도 했었지만, 막상 광양신문과 이별한다 생각하니 아쉬움이 앞선다.

지난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계곡에 레스토랑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며 사진을 찍는 기자가 있었다.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응원해주던 그 기자와 이런 저런 진솔한 대화를 나눈 게 인연이 돼서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됐다. 신문에 기고하는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나는 극구 사양했었다.
누군지 모르는 다수의 청취자가 있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방송프로에 쓰는 편지글보다, 대상이 국한되어 있는 지역신문이 오히려 더 조심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광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게 더 큰 부담감으로 작용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는 사람들이 읽을 거라는 사실이, 읽은 사람들을 곧 알게 될 거라는 사실이 상당히 민망한 일로 여겨졌던 것이다. 

결국 남편의 글을 시작으로 ‘귀농일기’가 쓰여졌다. 남편이 원고를 쓰는 얼마간 나는 그냥 방관자로 있었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던 어떤 작가의 말과는 반대로, 나는 마음이 너무 심란해서 글이 써지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꿈 많은 청소년같이 가벼이 날아온 남편과는 달리, 내게는 흔쾌히 결정한 ‘귀농’도 아니었고, 전혀 해보지도 않았던 일들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다고 생각할 때였고, 즐거운 일보다는 막막한 일들이 더 많은 것 같이 여겨지던 때였다. 게다가, 우울한 내 마음을 알아주기는 커녕, 늘 즐거운 소리로 글을 올리는 남편이 야속해서 한동안은 글쓰기가 더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지난겨울, 고로쇠수액을 채취하는 일 역시 방관자였던 내가, 혼자 애쓰는 남편한테 마음이 움직여 산을 같이 올랐던 게 계기가 돼서 광양신문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즐겁지만은 않은 시골살이 이야기가 주된 것이어서 조금은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한풀이를 한 것처럼 속이 다 시원해지는, 즐거운 경험을 한 것이다.

그 후로도 나의 일기는 즐거운 일보다 힘들고 속상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차츰 어떤 힘듦이나 불편함을 받아들여가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고 내 삶이 서서히 이곳에 녹아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귀농일기’라기 보다 내게는 그냥 넋두리 같은 거였다. 어떨 때는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은, 광양신문에 누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죄송스럽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귀한 지면을 할애해 준 광양신문에 한없는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몇 번 육아일기 쓰는 것 이외에는 편지도 제대로 쓴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일주일에 한 번 내게 긴장감을 주었고, 덕분에 내 생활이나 주변과 사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만들 수 있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광양신문에 일기를 쓰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그동안 중단했었던 글쓰기 작업을 계속 하게 됐다는 것이다. 잠시 내버려뒀던 내 삶을 추슬러 제대로 설 수 있도록 애쓰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어느 구석에 박혀 있었는지도 몰랐던 내 일기노트를 찾아 먼지를 닦아내게 된 일도 광양신문의 덕분이다. 이는 또 광양에 내려와서 생긴 일이니 광양의 덕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동안 원고를 ‘우아하게’ 보내지 못하고 마감시간 턱 밑에 맞춰 허겁지겁 보내는 바람에 애가 많이 탔을 이정미기자님께 마지막 사과의 인사를, 광양신문과 좋은 인연을 맺게 해 준 이수영국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끝으로 관심어린 애정으로 봐 주셨을 광양신문 독자님들께도 깊이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