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9>쟁이는 연장부터 만들어 쓰는 법
광양문화연구회가 만난 사람 <9>쟁이는 연장부터 만들어 쓰는 법
  • 광양뉴스
  • 승인 2014.08.18 09:42
  • 호수 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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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으로 거듭난 10년, 서각인 하동호

광양교육청에서 기능직 공무원으로 32년을 근무하고 정년한 지 10년째인 하동호(68) 씨. 필자가 2013년‘광양 꽃 축제’마당의 서각 작품 전시장에서 만났을 때, 곧 찾아뵙겠다고 했다.

그때는 광양의 마을과 사람들을 찾아서 대화한 내용을 책으로 정리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만나지 못하고 책을 낸 아쉬움이 있다. 이번엔 대담을 더 깊게 쓸 수 있는 조건으로 찾아갈 수 있어 마음이 편했다.

하동호 씨가 공직 근무 마지막 5년을 봉강북교를 폐교하고 만든 학생수련장에서 근무하게 된 것은 교육장의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였다. 그렇지만 서각이라는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의 교육장이 바뀌자 다시 교육청으로 들어와 근무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들었지만 학생수련장에서 계속 근무하며 정년을 맞이했다.

그 2001년부터 10여 년. 전문가가 되는 1만 시간 이상을 서각 활동에 바쳤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집중적으로 꾸준하게 1만 시간을 연습하면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성공한다는‘1만 시간의 법칙’. 하루 3시간씩 10년, 1만 시간이면 전문가의 길이 보인다.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 하동호 씨가 그렇다. 그를 최근에 만나는 사람들은 서각인으로 알지만, 오래 전부터 아는 사람들은 교육청에 근무했던 사람이다. 성미 급하던 사람이 조각칼을 들고 나무판에 매달려 있는 예술인으로 거듭났다.

전통 서각의 길로 이끌린 10년 
하동호 씨는 1983년부터 유행하던 ‘박 공예’를 했다. 박에 그림을 새기고 칠하는 재미. 2001년, 친구에게 박 공예품을 선물한 것을 본 봉강 군부대 대대장이 만나자고 했다.

대대장은 서각을 하는 사람이었고, 학생수련장과 이웃한 조령진료소 소장 남편도 서각을 했다. 그렇게 만남이 시작되어 광양제철초등학교 교사이면서 서각을 보급하던 박육철 선생과 더불어 10여 명이‘백운조형 서각회’로 모였다. 그들은 주로 현대 서각이었다.

현대 서각보다는 전통 서각이 맘에 들었으므로 모임에 나가지 않고 혼자 작품을 했다. 책을 보거나 절을 찾아가 사진을 찍어 와서 서각을 익혔다.‘방안 퉁소’였지만 아는 친구들은 작품 전시회를 권하기도 했다.

2009년, 광영동 평생교육관에 근무하는 후배가 서각 강좌가 있다는 연락을 했다. 그해 봄학기 수강 등록을 하고 갔더니 하동에서 강사가 오셨다. 얘기를 나눠보니 2003년 한국서각협회에 자신과 함께 등록된 440명 중의 한 분이었다.

강사는 서각인으로 등록된 분이 왜 수강하려느냐고 했지만 신입으로 여기고 가르쳐 달라 했다.
작품을 시켜본 강사는 깊은 내용은 하동 공방에 와서 익히고, 초급반이 20명이나 되니 보조강사로서 도와 달라 했다. 그렇게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가을학기까지 이어졌고, 경기도 구리시에서 열린 전국 평생교육 작품전에 13점의 서각 작품을 선보이고 왔다.

그런데 평생교육관에서는 강사가 그만 두었으므로 서각 과목을 폐강한다고 했다. 어이가 없어 관장을 찾아갔다.

수강생들은 서각 하는 도구를 30만 원이나 들여서 구입했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문을 닫으면 되겠느냐 항의하며 다른 강사를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동의 서각인들은 거절했고 광주나 남원에서는 멀다고 안 왔다. 할 수 없이 자율학습하는 동아리로 허락을 받았다. 2011년 평생교육관 관장이 서각 강사를 맡으라고 권했으나 사양하고 봄학기를 보냈다. 그리고 가을학기에는 강사 권유를 받아들여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쟁이는 연장부터 만들어 쓴다
서각은 한 두 해로는 손재주가 발휘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 수강한 사람들은 2~3년을 계속해서 매달린다.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모임과 공간이 필요했다. 우선 동아리를 만들었다.‘광양전통예각회’를 2011년 창립하여 초대 회장을 맡아 동아리 전시회를 처음 열었다. 13년에는 제2회 전시회를 가졌고 30명의 회원이 참가하고 있다.

서각을 할 때는 전동공구도 사용하고 끌과 망치로 쪼아대는 일이 많아 소음이 나므로 아파트에서는 작업할 수 없다. 또한 하루 내내 서각 작품을 하고 싶기도 하고, 수업에 빠지거나 더 작업을 하고픈 사람들이 함께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공방이 필요했다.

그래서 광양읍 칠성리 자택, 꽃과 나무를 가꾸려고 만든 10평의 비닐하우스를 공방으로 전환했다.
작은 마당을 채운 비닐하우스 공방, 시설은 열악하지만 열의는 넘쳐난다. 곳곳에 작품 하는 도구와 재료가 있고, 골목에도 나무들이 널려 있다. 이 비좁은 공방은 늘 개방되어 있다.

하루 대여섯 명에서 10여 명까지 나와서 작업을 하며, 개별지도도 해 준다. 공방을 드나들거나 동아리 활동에 회비는 없다.

나무를 잘 말려서 작품을 새기려면 못해도 2년이 걸린다. 나무를 구하고 쟁여두고 보관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넉넉하여 공방 시설을 잘 갖춰 제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폐교된 사곡초등학교에‘사라실예술촌’이 들어서면 교실 1칸이라도 주어지길 바란다. 회원들은 공공의 장소에서 날마다 모여 작품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 소원이다.

조각칼도 구입하여 쓰면 손에 맞지를 않는다. 그래서 손에 맞도록 손잡이를 다듬고 칼 모양도 필요한대로 만들었다.

아마추어는 주어진 연장을 쓰지만, 쟁이는 연장을 자기 손에 맞게 만들어 쓰는 것이다.
또한 한문 문장을 새기다 보면 모르는 글자는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학창 시절에 하지 못한 공부를 뒤늦게 보완하는 셈이다.

광양에‘서각 마을’을 만들고 싶은데
고향에서 연금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 소득에는 관심이 없다. 문화와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서각을 성의껏 가르치려는 의욕만이 가득하다. 이번 가을학기에는 광양읍의 공방을 평생교육관 위탁교육장으로 지정해 주도록 신청했다.

교육관에서는 전동공구 사용이 불가하고 망치질도 조심해야 하므로 작품을 제대로 새기기가 어렵다. 또한 수강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공방이라면 서각 학습이 더욱 효율적이겠다는 판단이다.

광양시 농업기술센터 시험 포장에서 열린‘광양 꽃 축제’에 2013년과 14년 부스를 제공 받아 다수의 시민들에게 서각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여러 직장의 퇴직자들과 광양제철 근무자들이 서각을 많이 배우는데 가까운 고향 사람들의 수효는 몇 안 되어서 아쉽다. 여성회관에도 개설을 하고 싶었으나 성원이 되지 않았고, 장애인 시설에서 교육하면 좋은 활동거리가 될 거라고 제안했지만 연락이 없다.

대담하는 중에 반가운 말씀은 서각으로 특화된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을 입구에 장승을 만들고, 집집마다 서각 문패를 단 전통 마을! 이미 강원도 홍천에는 서각마을이 있다.

하동호 씨는 스스로 시범단지를 추진해 보고 싶어서 동아리 전시회의 작품이 팔리거나 주문 받은 작품의 수입이 있으면 적립을 한다.

장수시대, 정년을 하고 20여 년을 무얼 하며 지낼 것인가? 친구 가게나 경로당에 모여 화투와 바둑, 등산과 한담을 나누며 보내는 것으로 만족스러운가. 문화 예술 활동에 관심들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 들어서 시작한 서각으로 새로운 인생을 열어젖힌 하동호 씨. 그동안 권유받은 개인전은 고희 기념으로 하려고 한다.

남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이녁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 모자라지만. 이렇게 몰입하는 시간이 10만 시간을 넘기면 위대한 예술인으로서 발자취를 남기지 않겠는가.

하동호 씨는 살아오면서 문화예술인의 솜씨를 다듬어온 듯하다. 교육청 기능직으로서 누가 알아주든 말든 온실을 만들어 달라하여 화분을 가꾸었고, 국화 화분 200개를 만들어 놓았을 때 교육부 감사반이 와서 감탄했다.

창고에 선반을 만들어 물품을 말끔하게 손질하여 정리정돈해낸 일도 예사로운 솜씨와 정성이 아니었다. 지금도 빗물을 받아서 70여 개의 화분에 물을 주니까 수도 요금이 절약되고 나무 성장도 좋다. 이렇게 생활을 가꾸던 정성이 문화예술인의 솜씨로 변화하고 성장해 나가는 뿌리가 아니었을런지.

/글·사진 광양문화연구회 박두규 (전라남도 청소년미래재단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