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태도와 가치에 주목해야할 때
삶의 태도와 가치에 주목해야할 때
  • 광양뉴스
  • 승인 2014.11.10 14:09
  • 호수 58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 강 현 (사)한국해비타트전남동부지회 사무국장

얼마 전, SNS를 통해 각국의 중산층 기준이 회자된 적이 있다. 간단한 각국의 중산층 기준이 왜 이토록 강렬한 파문을 일으킨 것일까?

그동안 경제적 부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해온 우리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산층이란‘30평 이상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500만원 이상의 급여와 중형차 등’으로 표현된다.

반면 자본주의 경제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의 중산층에 대한 개념은 단순한 경제적 소유개념에 머물지 않는다.

프랑스의 퐁피두대통령은‘외국어 하나 정도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과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다를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사회적 정의에 의연히 참여할 것과 약자를 도우며 꾸준한 봉사활동’하는 사람들을 중산층이라 했다.

영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제시한 중산층 기준은‘페어플레이를 할 것과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사회적 소통을 하며 약자를 두둔할 줄 알며 불의와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등이다.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중산층이란 영국의 기준위에‘매달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을 것’이 더 있을 뿐이다. 우리와 이들이 크게 다른 것은 가지고 있는 객관적 자산, 즉 경제적 잣대로 그 사람 또는 집단의 사회적 위치를 판단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중산층이란 그 사회를 지탱하는 구심점이 된다. 따라서 그들이 가진 경제적 자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영향력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 사회적 책무와 내면적 자산에 주목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 평등과 부의 크기가 그 집단의 사회적 태도와 가치를 결정한다는 논리를 들어 그들의 기준과 우리의 기준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음의 통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최근 보건복지부는 우리나라 아동의 ‘삶의 만족도’를 조사해 발표했다. 지난해 11월~12월 전국 18세 미만 아동을 양육하는 3천7가구(빈곤가구 1499가구 포함)를 대상으로 실시한‘2013 한국 아동종합실태조사’결과를 보면 가히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다.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 아동의 삶의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60.3점으로 OECD회원국 가운데 최하위이다. 그 이전에 유니세프가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를 모델로 측정한 아동행복지수에서도 우리나라는 수년째 OECD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제식민지와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세계 경제 12위의 경제대국을 이룬 이 나라의 아이들이 가장 불행하단다. 우리나라는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과정에서‘성공’이라는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한다.

물론 이때의‘성공’이라는 잣대는 철저히 경제적 지위와 부의 관점에서 제시되고 이 과정에서 무차별하고 극악한 경쟁관계가 형성된다. 자기자존과 자기만족도는 무의미하다. 학업성취도는 자신의 노력으로 새로운 과제를 수행해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의 경쟁에서 이기느냐에 맞추어져 있다.

그들은 철저히 적과의 팽팽한 긴장관계에 놓인 전선의 군인이나 다를 바 없다. 세계의 수많은 석학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시대는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무한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상상력을 갖는 것이 경쟁력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놀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받아들일만한 여유가 없다.

경제적 부에 얽매인 구세대의 가치가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이들의 미래까지 옭매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행복하지가 않다. 이 나라의 미래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우리도 심각하게 우리의 삶의 기준에 대해 성찰해보아야 한다.

유네스코 문화개발협력 국제포럼에 참가했던 존클래머 교수는“경제성장의 정점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성숙해져서 자연스레 풍겨나는 아름다움을 세계와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