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미래여성산후조리원에서의 15일
광양 미래여성산후조리원에서의 15일
  • 김보라
  • 승인 2015.11.09 11:31
  • 호수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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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지옥 입문 전 만끽하는 꿀 맛 같은 공주 체험”
미래여성산후조리원

2014년 9월 30일, 응애~ 하고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첫째 때는 친정엄마가 오셔서 몸조리를 해주셨지만 둘째는, 첫째 때문에 집에서 몸조리를 하면 오히려 골병든다는 선배 맘들의 조언에 따라 조리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대개 조리원은 2주 머무는데 2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지만, 나는‘아이 양육하기 좋은 도시’광양 시민인 덕분에 60만원을 지원받아 돈에 대한 부담감은 조금 떨칠 수가 있었다. (조리원 이용료는 1일 12만원으로, 2015년부터는 10박11일까지 최대 80만원을 지원해준다고 한다.)

10월2일 입소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몇 가지 검사를 마친 뒤 신생아실에 놓인 투명한 바구니에 고이 눕혀졌다. 이내 조리원 이용에 관한 수간호사님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고, 돌침대와 tv, 냉장고, 개인 욕실에 좌욕기가 설치된 나만의 공간을 안내받았다.(산모들에게 개인 좌욕기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산모복으로 갈아입고 뜨끈한 돌침대에 몸을 뉘였더니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사실 출산 후 3일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아이를 보기위해 문병 온 친지들을 맞이하고 시간에 맞춰 수유하러 신생아실 가느라 제대로 눈도 붙여보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빠져든 꿀잠을 만끽하던 중 울리는 전화벨소리.
“아이가 배고파해요. 수유하러 오실 건가요? 분유 줄까요?”
완모(100% 모유로만 수유하는 일을 뜻하는 요즘 엄마들의 언어)에 도전중이기에 얼른 정신차리고 수유실로 향했다.
산모휴게실을 지나 도착한 수유실, 이곳은 엄격하게 외부 출입이 통제된다. 면역력 약한 신생아와 산모들이 생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벨을 누르고 이름을 대자 간호사가 속싸개에 포근하게 쌓인 아들을 데리고 나온다.
첫째가 있지만 모유수유에 실패한 터라 이것저것 서툰 나에게 간호사는 자세를 이렇게 취하고 아이를 이렇게 대하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첫째때 친척들 말만 듣고 모유수유 도전했다 젖몸살만 끙끙 앓고 포기한 전력이 있어 두려웠지만 이렇게 전문가가 옆에 있으니 안심이 됐다.

미래여성산후조리원 휴게실.

10월3일
어제는 오후에 입소해서 조리원 프로그램을 하나도 이용하지 못했다. 오늘은 새벽 6시 칼같이 일어나 수유를 마치고 혈압과 열을 체크했다. 모유촉진에 도움이 된다는 허브차 한잔을 들고 반신욕기에 몸을 담았다. 1시간쯤 몸을 따뜻하게 해준 뒤 골반교정기로 옮겼다. 조금 아픈 듯했지만 출산 후 남산만해진 나의 골반, 되돌릴수만 있다면 이쯤이 대수겠는가 싶어 꾹 참았다.
산모휴게소에 비치된 반신욕기와 골반교정기는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지만 너무 자주 사용하면 안 좋을 것 같아 매일 오전 1번씩만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식사 시간이다. 혼자 있길 좋아하는 나는 방으로 식사를 갖다줄 것을 요청했다. 미래여성조리원은 산모들의 정보교류와 친목, 정서적인 만족감을 위해 6층에 카페테리아같은 식당을 마련해놓고 뷔페식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를 싫어하거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한 산모들을 위해 배식 신청도 받고 있다.
미역국을 기본으로 고기와 반찬 몇가지가 나왔다. 너무 맛있었지만, 모유량이 너무 많아 고생하는 나는 이걸 다 먹으면 또 젖몸살을 앓을 것이기에 눈물을 머금고 1/5만 먹은채 밥뚜껑을 닫아야 했다.
빨래감을 챙겨 내놓은 뒤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또 오후에는 산모의 붓기를 마술처럼 없애준다는 경혈 마사지(1회 제공, 추가는 본인부담)와 물리치료(매일 오전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1회 사용)를 받아야 한다.
내가 외출하면 어느새 청소 이모가 들어와 말끔히 방과 욕실을 정리해 주신다.

10월4일
주말이다. 아빠와 큰 아이가 왔다. 신생아실에 전화해 아이를 방에서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미래여성조리원은 아이와 친밀감 형성을 위해 모자동실을 허용하는 편이다.
방마다 신생아실에 있는 투명한 바구니가 비치돼있다. 수유쿠션과 산모 방석도 준비돼있어 편안하게 수유할 수 있다.
오전, 오후 나오는 맛있는 간식은 큰 아들 몫이 됐다. 공간이 넓어 아빠와 아들이 하룻밤 자고 가도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지만 엄마의 휴식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집에 돌아갔다.

10월5일
매일 소아과 원장님께서 신생아실을 회진해 아이들의 상태를 점검해주신다. 신생아실 간호사가 기저귀 발진이 너무 심해 아이를 격리 조치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백조 기저귀 대신 좋은 기저귀를 준비해달라고 한다. 당분간은 약을 바르고 기저귀를 채우지 않겠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알아서 분유도 설사분유로 바꾸셨다고 한다.
젖몸살이 너무 심해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이분들이 없었다면 끔찍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희수 아기와 김보라 기자.

10월6일
도저히 안되겠다. 유선염 때문인지 열도 나고 거동조차 힘들정도의 통증에 죽을 맛이었다. 1층 산부인과에 가서 진통제를 맞고 모유를 끊는 약을 처방받았다. 장종호 원장은 또 통증이 심해지면 얼른 내려오라면서 모유수유를 위해 이만큼 노력했으면 엄마가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다독여주셨다. 자책감에 눈물이 펑펑 났지만 원장님 말 한마디가 위안이 됐다.
오늘은 머리 감는 서비스(2회 제공)와 IPL(1회 제공)을 받는 날이다. IPL이라, 비싸서 받을 엄두가 안 났는데 조리원 들어오니 이것도 해준다네! 내 평생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보랴? 꼭 연예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10월7일
내 생일이다. 미역국, 하도 많이 먹어서 지겹다. 맛있는게 먹고 싶다. 엄마가 마침 집에서 맛난 생일상을 차려준다고 하신다. 조리원에서는 산모가 찬바람 쐬면 안 좋다며 외출을 자제하라고 하는데, 그래도 생일상은 꼭 먹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면 아이 때문에 밥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생활을 몇 년 해야 할텐데, 마지막 포식이라 생각하니 더욱 간절했다. 이런 심정을 이해하셨는지 수간호사님께서는 외출을 허락해주셨다.

 

10월8일
이제 좀 쉬나 싶었는데 사흘 후면 집에 가야한다. 시에서 10박11일까지 지원해준대서 그렇게 계약했는데, 너무 아쉽다. 내 돈 들여서라도 며칠 더 있어야겠다. 나쁜 엄마라고 하지 마라. 아이가 보기 싫어서가 아니다. 산후조리는커녕 유선염에, 먹지도 못해 지칠대로 지친 내가 먼저 살아야 아이도 돌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오늘은 사진관에서 나와 공짜로 아이와 내 사진을 찍어준다고 한다. 경혈마사지로 붓기가 다 빠지고 IPL과 얼굴마사지를 받은 덕택에 피부에 광택이 주르르 흘러, 현재 나는 소싯적 날리던 처녀 때 외모 상태로 되돌아갔다. 이래서 여자의 외모는 투자와 비례한다는 것인가. 이런 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10월17일
집에 가는 날이다. 그동안 잘 먹고 푹 쉬어 컨디션은 최상이다. 엉덩이 발진도 가라앉고 배꼽도 예쁘게 떨어진 아이는 그새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랐다.
퇴실 준비한 후 아이 목욕법과 맛사지방법, 기타 육아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신대서 신생아실로 향했다. 첫째를 키워봤지만 흐르는 세월에 기억이 희미해져 모든 게 새삼스럽기만 하다.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을 지키는 것 못지 않게 여자로서의 행복감도 선사해준 미래여성조리원! 이곳에서 충분히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충전한 덕분에 육아 지옥(?)에 입성해도 잘 버티고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 우리 아이와 나를 정성껏, 진심으로 보살펴 주신 미래여성의원 장종호 원장과 조리원 간호사 이모들, 식당, 청소, 빨래 등 조리원 식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