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서설묘
궁서설묘
  • 광양뉴스
  • 승인 2016.03.1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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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전남상담소 소장
김영우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전남상담소 소장

  궁서설묘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뜻으로 아무리 약한 자라도 퇴로를 차단하고 급하게 몰아가면 강자에게 대든다는 비유다.

  여기에서 북한이 약한 자도 아니며, 북한의 젊은 통치자가 중국인사의 말대로 버릇없고 나쁜 놈임에 틀림이 없다. 북한주민들은 헐벗고 굶주리는데 막대한 돈을 들여 새해벽두부터 4차 핵실험과 장거리로켓발사로 한반도에 긴장을 초래한 것도 묵과할 수 없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도 최선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중국에 서운한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하고 국제사회보다 앞서 개성공단폐쇄라는 초강경 카드로 남북관계를 군사정권시절로 되돌려버렸다. 대통령은 기다렸단 듯이 사드 한반도 배치를 노골화하고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반대한 한반도 비핵화를 여당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우리도 핵을 가져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뿐인가 핵 항모를 포함 한반도가 최첨단무기의 전시장이 되어버렸다.

  북한도 남한의 대통령을 모독 한다지만 대통령 또한 “반드시”란 언어로 일말의 여지가 없음을 각인시키며 북한을 최대한 자극하고 있다. 지금 남북관계는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지난 3년 동안 외교, 경제, 국방 모두 실패한 것으로 회자되고 OECD조사결과 민주주의 후퇴로 국민행복지수라 할 수 있는 삶의 만족도는 전란국가보다 못한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대통령의 생각으로 북한을 변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으로 제재수단 밖에 없다고 국민께 호소하고 설득하지만 역사는 대화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경제상황에서 안보를 빙자한 긴장조성은 외국자본이 빠져나가게 되고 부동산과 경제는 파탄으로 치닫게 돼 죄 없는 국민만 피해를 볼게 뻔하다.

  동독이 무너지고, 중국의 개혁개방이 성공하고, 러시아연방이 해체된 것 모두가 전쟁보다는 변화에 의한 평화공존만이 답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사에 미국에 의한 전쟁은 조기에 끝난 적이 없고 베트남전쟁은 실패했으며, 이라크, 시리아, 아프칸은 지금까지도 내전에 시달리면서 동족살육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논의에 합의했다는 뉴스도 있었지만 이후 핵실험과 장거리로켓발사로 유엔의 대북 제재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북한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 유엔 미국 중국의 결정이 어떻든 우리는 남북관계를 너 죽고 나 죽기(살기)식으로 몰고 간다는 것은 위험하다. 집권 3년을 넘긴 대통령의 평가는 극명하다.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권위, 독단·독선, 불통이란 단어만 있을 뿐 상대를 존중하고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점은 눈꼽만큼도 없다.

  테러방지법 하나만 봐도 그렇다. 야당이 전면거부가 아니라 부분거부인데 비해 청와대 정부여당은 토씨하나 건드릴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결국 밀어 붙였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견제기구인 국회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고 걸핏하면 직무유기로 매도하고 국민에게 진실한 사람만 믿으라고 주문한다.

  나는 노동조합 관련 업무를 30여 년 동안 해온 사람이다. 80년대야 무조건 명분을 앞세웠지만 현재의 노동조합 간부들은 실리와 명분에 있어 매우 민감하다. 조직의 규모에 상관없이 민주주의와 평등을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외교, 여야국회 모두도 실리냐 명분이냐를 따질 것이다. 하지만 실리와 명분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우선대화가 선행조건이다. 한 가정의 행복과 화목의 전재조건도 가족 간 많은 대화다. 가족 간 대화가 단절된다면 그보다 큰 불행은 없을 것이다.

  실패한 위안부협상 후에도 아베총리는 막가파식의 언행으로 일관해도 대통령의 표현은 일본에 유한 반면 유독 북한을 향해서는 표독스럽다. 때마침 3.1절 기념사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으나 북을 향해 대화의 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상대와 대화의 끈이 존재해야만 명분도 실리도 생각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처해 있다. 남북관계를 개인의 자존심으로 비유할 수 없지만 참수작전, 폭정 등의 언어로 상대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짓밟아 버리면 역반응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퇴로를 열어주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