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 힘과 신비로움
자연! 그 힘과 신비로움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2.14 10:28
  • 호수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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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나라 김세광·복향옥부부의 귀농일기
 
오늘도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과 부딪히며 육판골 산에 올랐다.
고로쇠 나무들이 자생하고 있는 정상 부근까지 힘겨운 걸음을 옮기면서도 정작 내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제서야 겨울다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거센 눈보라가 닥쳐와도 그와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내 몸의 저항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은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내인생의 또다른 자신감일 것이다.

한겨울 몸을 웅크린 채 도심 한 가운데의 빌딩 숲 속에서 힘들게 서성거려야 했던1 년 전의 내 모습과 비교해 보면 지금은 상당한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이제 낮설기만했던 광양에  뿌리를 내린지 1 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이곳에 새롭게 터전을 잡은 것은 하조마을에 큰 동서 내외분이 살고 있어서 틈날 때마다 빈번하게 찾아왔고 그러다 백운산과 계곡, 마을의  아름다움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 아닐까 ?
또 하나 이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태어난 광양을 유난히 사랑했던 사람, 대학에서 역사를 강의하며 소설을 썼던 고 이균영 형 한사람일 뿐이다. 대학에서 유난히 친하게 형 아우처럼 지내었고 그 덕분에 집사람과 내가 만나 가정을 이룬 정도가 인연의 끈이랄까 ?

그것이 광양으로 내려온 전부였다. 그동안 도회지생활에서 누려왔던 편리함에 익숙해져있던 처와 아이들에겐 이곳 생활이 처음에는 무척 낮설고 힘들었다. 그들의 원망섞인 소리를 들으며 아빠된 도리를 잘못하는 것같은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던 날들이 마치 밝은 태양의 저편처럼 내게도 짙은 어두움이 가득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힘든 과정을 어느 정도 극복해 내면서부터 평소 그려왔던 농촌이 마음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하조나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가끔씩 내게 던지는 말은 어찌해서 서울 생활 버려 두고 이 골짜기에서 고생하느냐고 묻곤하였다. 그 분들의 근심어린 이야기에 딱히 대답하기가 궁색했지만 나는 다만 시골생활이 그리워서, 자연속에서 사는 것이 좋아서라고 말하곤 했다.
원래가 강원도 바닷가 출신이라 30 여년 도시생활을 하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항상 목마름으로…세월이 더할 수록 그 갈증은 깊어지곤 했다.

도시생활이라는 것이 일상에 발이 묶인 채 다만 건조하게  살아갈 뿐이지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란 생각은 긴 세월 동안 내 머릿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새롭게 만나게 되는 일 하나 하나가 내겐 매우 소중하고 보배롭다.
요즘은 고로쇠 수액이 나오는 철이라 분주하게 산을 오르내린다. 오래 전부터 깊은 산속에서 자생하며 앙상한 가지만을 남긴 고로쇠 나무에게서 천천히 흘러나오는 수액을 보면 한 겨울에도 강인함을 잃지않는 고목의 힘과 자연의 신비로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인간은 자연에게 주는 것이 없는데 자연은 인간에게 한없이 베풀어주고  너그럽기까지 하다.

결코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자연의 혜택을 다시금 생각해보며 그들에게 감사 할 줄 아는 내 현재의 일상이 만족스럽고 보람스럽다. 마치 한겨울의 골바람과 한판 전쟁하 듯 단단하게 복장을 하고 찬바람을 가르며 높은 산을 오르면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전해지는 상쾌한 입김과 오랜동안 도회지 생활에서 걸려있던 가시처럼 남아있던 찌꺼기가 한번에 사라진 듯하다.

처음엔 시골에 내려간 후 떠나온 것에 대해 후회하지나 않을까? 또 그 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곳 생활을 시작해보니 시간을 여러번 쪼개어도 모자랄만큼 나의 손길을 필요로하는 곳이 참 많다. 내가 세상에 이렇게 쓸모가 많은 존재라는 사실조차 요즘에는 놀랍기도하고 한편 자랑스럽다. 지난해까지는 무미 건조하기만했던 도회지의 삶이 내 중심이었지만 앞으로는 도회지에서 누려보지 못했던 신선한 농촌의 삶이 나를 기다린다. "조화로운 삶"의 저자 스캇 어닝 부부의 이야기처럼 농촌이야말로 우리에게는 미래의  희망이고 안식처이기도하다.
스스로 즐기며 이루어내는 일들이야말로 창조적인 삶을 이끌고 조화로운 인생을 누릴 수 있는 근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