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향기-병동 24시
생활의 향기-병동 24시
  • 광양뉴스
  • 승인 2017.11.09 18:40
  • 호수 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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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경, 한국문인협회 광양시지부사무국장

생과 사가 공존하는 대학병원 응급실 안은 언제나 긴장감이 감돈다. 팽팽한 불안감과 날카로운 신경이 곤두서 있다. 뭉크의 절규 같은 공포가 병실 안을 가득 채우고, 폭풍전야 같은 침묵의 깊이가 끝 모르게 패이고 있다. 의사의 작은 눈빛 하나, 목소리의 높낮이 그리고 발소리의 속도와 강약에도 보호자들과 환자들은 심장이 두근거린다. 굳은 표정 속에서 흘러나오는 말 한 마디에 절망의 나락 속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하고,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잡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입원실 안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위급한 상황과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공포만 없을 뿐이지 팽팽한 조바심과 예리하게 날이 선 극도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암 환자와 일반 수술 환자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 병실 안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신경전이 벌어진다.

옆 병상 환자의 큰 목소리에도 화가 나고, 간호사의 작은 실수 하나에도 짜증이 솟구친다. 보호자들이 내는 투박한 구두 굽 소리에도 날카로운 신경은 끝을 모르고 치솟는다. 그 속에는 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심장을 조이고 있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환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불안감에 순간순간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진다. 가끔씩 방향을 알 수 없는 두려운 빛이 동공 안에 머물기도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손끝에 미세한 두려움이 흐르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수액이 흘러들어가는 끈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병상의 이불을 당겼다 펴는 행위를 수없이 반복한다.

삶을 향한 욕구 또한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말로는 죽는 것이 낫다고 하지만 그것이 반어적 표현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살 수 있다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살을 저미고 뼈를 깎는 고통을 묵묵히 참아내는 모습 속엔 숭고함마저 깃들어 있다. 그렇게 하면 희망과 빛나는 삶의 순간들이 달려와 자신의 손을 맞잡을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 마음에 아무도 제어장치를 걸지 못한다.

절망에 빠진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의료진들뿐이다. 조금만 무관심해도 화가 나서 의사나 간호사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대들지만 결국은 그들의 손을 잡으며 매달릴 수밖에 없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심장을 조이고, 마른 입술을 깨물며 가빠오는 심장을 부여잡으면서 기대는 곳이 그들인 것이다.

자신의 하나 뿐인 목숨을 내맡길 수 있는 곳은 그들 외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진 오는 의사들의 굳은 표정만 봐도 긴장하여 손끝이 떨리고 전신을 휩쓸고 달려오는 불안감을 밀어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안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그 어떤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밀려온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결이 잦아지고 커지며, 눈동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불안은 신체적 내부 기관에 생기는 흥분 때문에 오는 일종의 고통스런 감정적 경험을 말한다. 이런 흥분들은 내적·외적인 지나친 자극에 의해 발생하며 인체의 자율신경계통의 조정을 받는다. 예를 들면 사람이 위기에 다다랐을 때는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입이 마르고 손발에는 땀이 많이 난다. 프로이드는 그것을 어떤 내장 기관의 흥분이 보여주는 특이한 현상으로 보았다.’고 캘빈 S. 홀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 수술을 앞 둔 환자들은 더욱 강한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담담한 척 하지만 누가 봐도 단 번에 알 수 있을 정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완벽주의이거나, 결벽증이 있거나 혹은 성격이 단호한 사람일 경우에는 더욱 심한 증세가 나타난다.

평소에 조용하던 사람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는 것이 그 경우이다. 더욱이 극도로 날카로워진 신경은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게 만든다. 심하면 자신의 몸에 꽂힌 링거 관을 모조리 뽑아 비닐봉지에 넣고 쓰레기통 속으로 버리기도 한다. 그런 후 정신이 들면 자신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내가  미쳤나 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을 보면 불안은 공포의 감정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극도에 다다르면 공포심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팽창한 병실 안에도 따뜻한 사랑은 흐르고 있다. 서로의 아픈 마음을 다 알고 있는 보호자들은 나의 가족 너의 가족을 구별하지 않는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하나가 된다. 너와 나가 아닌 우리가 되어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을 살뜰하게 챙겨준다. 보호자가 없는 환자들을 위해 기꺼이 목욕을 시켜 주고, 귀하고 소중한 마음들을 아낌없이 나누어 준다.

 의사와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다. 환자나 보호자가 아무리 화를 내고 짜증을 부려도 언제나 한결같은 표정으로 친절과 사랑의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그들은 처음 의사가 되었을 때 맹세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지 않고 있다. 양심과 위엄으로써 의술을 베풀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그들이 한 선서를 환자와 보호자들은 믿고 있다.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다고 첫 가운을 착용하고 촛불 앞에서 맹세했던 나이팅게일 선서를 지키고 있다. 그러기에 환자와 보호자들은 절망의 순간이 왔을 때 그들의 흰 옷자락을 잡고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배신해도 부모는 절대 자식을 버리지 않는 것처럼 의료진들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따뜻하게 껴안는다. 그런 의료진들을 보호자와 환자들은 믿고 의지한다. 그들이 흰 가운을 입고 처음으로 한 선서를 믿고, 그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랑을 믿고, 진실과 양심을 믿는다. 그 믿음이 결코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임도 믿고 있다.

병동 24시는 긴장과 불안과 극도의 절망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지만, 그것들보다 더 강한 사랑과 믿음과 진실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환자와 보호자들은 오늘도 희망을 꿈꾸는 것이다.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고 살만하다는 것을 가슴 벅차도록 느끼게 되는 것이다.

 

*11월 8일 90이 되신 아버지 수술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건강을 되찾게 해주신 전남대병원 박은규 외과 교수님께 머리 숙여 큰절 올립니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랑과 정성으로 아버지를 간호해주신 박규원 수간호사님을 비롯한 1동 8층 B동 외과병동 간호사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