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옥경이
내사랑 옥경이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8.07 09:42
  • 호수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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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늦게 치운 설거지거리가 산더미다.
그녀의 출근시간이 늦는다. 고추를 따고 있을까? 아니면 논에 약을 치나…그것도 아니면 그녀의 민박손님들을 위해 닭을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뭔 ‘일’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여덟시 반이면 출근하던 그녀가 여름이 되면서부터 더 바빠졌다. 아침부터 고될 그녀한테 미안해서, 열심히 설거지를 하는데 그녀가 들어온다.
 
“고생이 많네”
목소리에 활기가 있다. 돌아보니 하회탈처럼 웃고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늦도록 하조나라에 있다가 새벽부터는 집안일 하느라 힘이 많이 들텐데도 항상 그렇게, 씩씩하게 출근을 한다. 그녀의 손에 오늘은 젬피(피리탕에 쓸)나무 가지가 들려있다.

하조나라가 바빠지기 직전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 간경화였다. 아내보다 술을 더 사랑하던 그녀의 남편이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아무런 얘기도 없이 출근이 늦어지길래 전화하니 119를 타고 병원 가는 길이란다. 그녀가 없는 동안 나는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주방에 있으니 명색이 조리장인데 하조나라 사모님도 돼야하고 남편이 없을 때는 사장님도 돼야하고... 우리 애들이 부르면 엄마가 되고, 아르바이트생들이 부르면 이모가 되고, 시간이 나면 잠깐 주부가 돼서 집안일도 하고…생각주머니에는 온통 그녀만 있었다. 그녀가 있으면 내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는데…그러다가 문득 전화를 하니 그녀는 내 걱정을 먼저 한다. 때문에 나는 안부전화를 자주 할 수도 없었다.

한 열흘이 지나서였까, 우리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의 딸 은영이를 데려다주기 위해 갔다가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만났다. 만나서부터 헤어질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고 있었다. 착하고 부지런한 그녀는 결국, 다음날 이른 아침에 하조나라를 찾았다. 열무를 소금에 절여놨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우리가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열무김치도 담아놓고 부추김치를 버무리고 있었다. 고맙기 전에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서성이다 김치통만 옮겼다. 그리고는 주방에 서서 잠시 얘기를 나누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오늘,  진짜진짜 고맙구 미안해. 나 걱정해줘서 고맙구,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구…”  “문디~” (그녀한테 이 소리를 들을 때 행복을 느낀다. 사랑한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두텁고 거친 그녀의 손을 만지다 내려다보는 순간 콧등이 찡-해지더니 목젖이 꽉 막힌다.

모든 손톱이 다 절반만 박혀있다. 흙에 손톱이랑 손가락 끝이 닳았다는 느낌이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목젖이 막혀 있기도 했지만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망설이다가 때를 놓치고 말았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손이며, 내게는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손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성은 ‘성’이요, 이름은 ‘옥경’인 그녀.
내 친정엄마 만큼이나 남한테 주기를 좋아하고, 웬만해서는 힘들다 싫다 말 안하고 참기 잘 하는 그녀, 하조나라까지 두 집안 살림하느라 바쁜 그녀, 자기만큼이나 성실하고 착한 은영이의 엄마인 그녀를 난 사랑한다.

옥경여사, 힘내!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하나님이 언니를 잘 아시니까 분명히 복 주실 거야. 그리고 옥경여사의 큰딸, 혜정아. 네가 있어줘서 고맙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