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성전을 돌아보며
중국대성전을 돌아보며
  • 광양뉴스
  • 승인 2019.04.1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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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향교 옥곡지회, 중국 산동성 곡부시‘대성전’다녀와
공자 흔적 묻은 태산 대성전 분향, 유림 의미 되새겨

태산 대성전 분향 모습(, 아래)

광양향교 옥곡지회 회원 13명이 중국산동성 곡부시에 위치한 강태공사당과 산동성박물관, 태산등정 여러 곳을 둘러본 태산과 대성전에 관한 소감을 적어본다.

우리는 이번 여행을 위해 1 전부터 여행계획을 세워 지난 4 3 김해공항을 출발, 2시간 만에 중국 청도공항에 도착했다.

태산(泰山) 중국산동성의 중부인 태안시에 위치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중국이 자랑하는 전국주요 문물보호구역등 역사전통 경관과 문화유물이 많은 지역으로 최고의 명산칭호를 받는 산이라 했다.

태산의 권역은 2400ha 광활한 면적과 1545m 웅장한 산세로 오악독존(五嶽獨尊) 천하의 제일산으로 불리는 중국문명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악은 동악태산 서악화산 남악형산 북악항산 중앙숭산 있는데 이중 태산이 지존(至尊)이라 했다.

금성옥진

태산은 예로부터 신성시 했던 산이라 진나라 시황제(始皇帝)부터 수많은 황제들이 의식을 올렸다 한다.

공자가 여기 태산에 올라 노나라를 바라보며 천하가 조그만 하다하여 공자소천하처(孔子小天下處)라는 비문이 있는가하면, ()나라 한무제(漢武帝) 본인이 하늘과 동격이다 하여 어떤 것도 표현할 없다는 뜻에서 5.2m 무자비(無字碑 글씨가 없는 ) 세웠다 하며, 당나라 현종의 글씨인 대현봉 황제들의 유적물이 헤아릴 없이 많았다.

이렇다보니 태산은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은 하늘의 아들, 천자인 황제가 숭배하고 제사지내는 방향으로 산동성이 더없이 광활한 평야에 홀로 우뚝 솟은 성지(聖地), 그야말로 천하의 성지 중의 성지였다.

중국의 모든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 지내는 봉선의식(封禪儀式) 올리며 숭배했던 신성(神聖) () 태산이다 보니 오악독존이라는 말이 틀림이 없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말로만 들었던 태산 태산 옥황정(玉皇亭)에서 천지를 바라보니 조선시대 문신 양사언(1517-1584) 태산이란 시문이 생각났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오르면 오를리 없건 만은, 사람은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 글귀를 떠올리며 내려오면서 태산을 우리 광양 백운산과 비교를 해볼 백운산보다 300m쯤이 높은데도 주위경관에 물이 없음이 아쉽고, 8 능선쯤에서부터 정상에 이르기까지 유적지의 8천여개 돌계단과 로면(路面) 옛날 두꺼운 석판(石板) 깔린 것이 중국당국에서 태산을 관리하는 데에 있어 많은 공을 들인 것이 엿보였다.

가이드 얘기에 의하면 태안시(타이안) 태산과 곡부시(취푸) 공묘(孔廟) 산동시의 상징이라 했으며 태안시는 태산으로 먹고살고 곡부시는 공자로 먹고 산다라 했는데 말이 이해가 되었다.

 

대성전(大成殿)

 

세계 4대성인(聖人) 말하자면 예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로 사람인 공자께서 태어난 생가와 무덤이 있는 곳으로 중국역대 황제들이 증축보수로 인하여 궁전과 같이 장대한 건축군으로 형성된 이곳 대성전 전권역의 규모는 200만평에 이른다.

이곳 대성전권역을 구분하자면 공부(孔府) 공자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그의 집을 말하며, 공묘(孔廟) 우리나라로 보자면 대성전과 같은 기능을 가진 곳이며 (우리 성균관에서는 공자의 존영을 모시고 있는데 여기서는 공자의 인물 모형물을 모시며 우리는 행단이 은행나무인데 여기는 살구나무) 그리고 공림(孔林) 공자묘지(墓地) 비롯 그의 제자 몇몇과 가족묘지로 구분돼 있었다.

대성전(공묘) 정문인 남문을 통하여 들어가자면 9개문을 통과해 들어가게 되는데 도로 로면(路面) 두꺼운 석판이 깔려져있고 도로양쪽에 있는 향나무 혹은 편백, 측백나무가 서있는데 이는 고풍스러움을 한층 높여줬으며 나무들 수령이 적게는 200년에서 많게는 1000년이 넘는 나무도 있다고 했다.

곁들여 나무박사 고영석의 조언(해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제남시 대명호 가는

이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으로 중국에서 3 고궁이 북경의 자금성태화전, 태안의 태산천황전, 곡부의 대성전인데 자금성태화전 다음으로 건물이라 하며 전국시대에 처음으로 건축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사를 지내며 황제만이 있는 황금색 기와를 얹어 공자의 역사적 지위를 보여주는 곳이며 공묘 내에서 모든 건축군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가로54, 세로34, 높이32m 전면 9 측면 5 겹침 지붕으로 제왕을 상징하는 구오제(九五制)양식으로 28개의 장식된 ()두리기둥이 받쳐있으며 앞을 떠받히고 있는 10개의 전면 돌기둥에는 두마리 () 여의주(如意珠) 가지고 노는 모습이 아주 또렷하면서도 세밀하게 조각 돼있는 것이 공자의 높은 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 하늘과 황제를 상징하는 황궁의 대웅전에만 존재하는 것이라 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냥 지나칠 없어 특별히 대성전(공묘)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기본으로 진설된 제물에 경건한 마음으로 길이가 40cm 되는 () 3개를 사서 앞줄 세명(전전교 김창식, 시의원 조현옥, 필자 안영신) 각자 ()하나씩 들고 불을 지펴 분향을 하고 다음 국궁 4배는 뒷줄 일행 10명도 같이 올렸다.

 

인산인해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놓치지 않고 광양향교 유림답게 예를 다하여 분향을 올렸다.

분향 예를 올리고 나니 마음이 뿌듯했다.

결론은 1 전부터 여행목적이 여기서 분향 예를 올려보겠다는 것이 주된 목적 아니었던가!

그런데 여기서 짚고자 하는 것은 공묘(대성전) 전면에 두리기둥 10개가 떠받치고 있는데 규모가 높이 8m 둘레지름이 0.8m 기둥 하나하나를 깎아 만드는 개당 소요기간이 무려 5년씩 걸렸다하니 신기하기만 했다.

하나는 건륭제(1711-1799) 세웠다는 비석인데 비는 육안으로 보아 비문의 규모는 높이5m, 3m, 두께 0.4m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가이드는 비석(碑石)무게가 65톤인데 북경에서 제작하여 운반해 왔다면서 어떤 방법으로 여기까지 가져 왔겠냐고 질문을 했고, 아무도 답변을 못하자 가이드는 겨울이면 얼음을 땅바닥에 얼려서 둥근 원목을 밑에 놓고 위에 비석을 뉘어 수백 km 운반해왔다고 얘기했다.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당시 중국 같은 나라에서만이 있는 일이지 작은 나라에서는 꿈도 같은 생각이 들었으며 참으로 대단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고로 이곳 아니라 치박시에 있는 세월을 낚았다는 강태공사당, 역대황제들이 봉선의식을 가졌다는 태안시 태산에 있는 천황전(天皇殿), 다시 찾고 싶은 관광명소로 인문학에 조예가 있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번 산동성 여행을 통해 공자의 유적지를 비롯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마지막 저녁만찬은 자축을 하기 위해 특별히 한국인 식당에서 가이드를 통해 푸짐한 메뉴준비로 둥근 원탁테이블에 앉았다.

치신소한 앞에서 나무박사 고영석

우리 일행은 70세를 맞는 김용호 씨와 환갑을 맞이하는 조현옥 시의원의 무병장수를 빌어주기 위한 축하 하례와 우리가 가져온 한국 소주와 현지 술인 오악독존이란 술을 비롯 식당에서 좋다는 술과 음료를 나누어 마시면서 이번 여행에 관한 소감을 한마디씩 돌아가면서 했다.

그리고 세상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광양향교의 무궁한 발전과 회원들 간의 우의(友誼) 다지며 아울러 저마다 앞날에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자축건배를 올리며 막을 내렸다.

=광양향교 안영신 전사무국장

사진=광양시청 김영진 하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