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향기] 뜨겁고 눈부시게
[생활의 향기] 뜨겁고 눈부시게
  • 광양뉴스
  • 승인 2019.08.09 18:41
  • 호수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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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경 한국문인협회 광양시지부장

뜨거운 여름이다. 나뭇잎들은 한껏 물을 머금은 채 넘쳐나는 초록의 힘을 자랑하고 있다. 살아 있음을 알리는 매미들의 뜨거운 삶의 몸짓들이 짙푸른 녹음들을 타고, 하늘위로 끝없이 날아오르고 있다.

뜨겁다는 것은, 더없이 아름답고 숭고하다. 여름이 뜨겁지 않으면, 향기롭고 튼실한 열매를 가을에 맞이할 수 없다. 삶이 뜨겁지 않으면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맛 볼 수가 없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뜨겁지 않으면 천적에게 모두 잡아 먹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매미는 짧게는 7년, 길게는 17년까지 땅 속에서 애벌레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지상에 올라와서 살 수 있는 시간은 겨우 1~2주일이다. 그 짧은 시간동안 매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있음을 외치고 짝을 부르고 알을 낳고 죽어간다. 죽는 그 순간까지 살아있음을 외친다. 자신을 알아달라고 선포한다. 온 몸으로 뜨겁게 울면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뜨겁게 살고 싶다.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여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 어떤 순간이 와도 후회하지 않고, 정말 잘 살았다고 나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도록 아름답고 눈부시게 살고 싶다.

포항에 있을 때 22층에 살았다. 그린 색 유리 탁자가 놓인 베란다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포항 시내가 한눈에 들어 왔다. 새벽이 오도록 꺼지지 않던 포항제철의 용광로 불빛 그리고 포항시가지.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불나방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휘황찬란한 그 불빛을 향해 뛰어들면 온몸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지상으로부터 67미터가 되는 우리 집 베란다에 서서 나는 문득문득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날개를 휘저으면 불빛 위로 살포시 내려앉을 것만 같아 가슴을 설레면서. 그래서 나는 가끔씩 밤에도 잠자지 않고 깨어나 베란다 창문에 얼굴을 대고 바깥세상을 그리워하곤 했다.

난 상자 안에 갇혀 박제 된 한 마리 나비 같다는 생각을 늘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생명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무수한 바깥세상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바라보며 돌진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힐 때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나를 억눌렀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 불빛들 속으로 뛰어 들어 활활 타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 집을 지곡 스카이라운지라 불렀다. 그래서 나는 지곡 스카이라운지 마담이 되었다. 온 종일 있어도 손님 하나 오지 않는 커피숍. 그 공간이 나는 좋았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그 시간들이 한없이 감미로웠다. 설레고 행복했다.

난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즐겼다. 커피를 끓이고 빵을 구웠다. 그리고 베란다에 나가 커피 향내를 들이켰다. 그 순간만은 내가 박제된 상자 속에서 깨어나 생명을 얻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가족들이 학교로 회사로 가고 나면 황금 같은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창문을 열어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청소를 하고, 음악을 틀어 놓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린다. 이른 새벽에 구워둔 빵을 박꽃 같이 하얀 속살을 드러내는 접시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커피를 탄다. 형산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구수한 빵 한 조각으로 시간을 여행하고 있노라면, 나를 옭아매었던 현실의 고통들도 저만치 물러나곤 했다.

봄에는 눈처럼 휘날리는 벚꽃송이들이 눈앞에서 춤을 추고, 여름엔 처녀의 가녀린 허리 같은 수양버들 가지 위에서 우는 매미 소리를 들었다. 오후쯤 되면 학교 갔다 돌아오는 코흘리개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볼 수 있었고, 시장을 오가는 이웃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복도 훔쳐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가슴을 사로잡은 것은 동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내 고향 언덕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포항을 떠나 광양으로 이사를 온지 어느 새 18년이 되었다.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이질감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제는 정말 광양 사람이 다 되어버렸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 나는 한동안 이 곳에 적응하지 못했다. 늘 불안했다. 부평초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섬진강 다리를 건너 남해바다로 달려가곤 했다. 수평선이 환하게 보이는 곳에 차를 대놓고 한없이 고향 쪽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부터 노을이 찾아오는 저녁까지 꼼짝도 않고 앉아있었던 적이 수없이 많았다.

다리를 건너 되돌아올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이 곳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그 뿌리가 흔들린다 해도 절대 거둬서는 안 된다고.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매여 헤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내 삶만 더 피폐해질 뿐이라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아파트 3층인데 조용한 동네다. 원고를 쓰다 오른 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베란다 유리창을 반쯤 가린 커다란 느티나무가 수줍은 미소를 보낸다.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살짝 고개를 들이미는 푸른 하늘은 마치 숲 속에 앉아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난 이 집이 정말 마음에 든다. 지곡 스카이라운지는 아니지만 정원 같은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또 다른 꿈을 피워 올리고 있다.

형산강이 포항의 젖줄이라면 섬진강은 남도의 젖줄이다. 가슴이 답답할 때 달려 나가면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안아주었던 형산강처럼, 섬진강도 여정에 지친 나를 따뜻하게 껴안아 주고 있다. 그 섬진강이 있기에 난 새로운 생명수를 얻을 수가 있었고, 든든한 뿌리까지 내릴 용기가 생긴 것이다.

사람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한 때는 도망가고 싶었던 이 섬진강 기슭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가 있으니 말이다. 가끔씩은 목젖이 보이도록 웃기도 하고, 잔잔한 미소는 날마다 피워 올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10년쯤 뒤, 이 섬진강 기슭 위에서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서 있게 될까. 더도 덜도 말고 지금 이 마음을 변함없이 가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으리라. 뜨겁고 눈부시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다보면, 그 때도 오늘처럼 눈부시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