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기념행사 없어 선열들 위업 ‘퇴색’
추모·기념행사 없어 선열들 위업 ‘퇴색’
  • 광양넷
  • 승인 2007.03.07 22:29
  • 호수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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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우리지역 ‘3.1절’

온 시민과 함께하는 ‘기념식’ 개최를


우리는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현재속에 살아가고 있다.

특별하게 변화한 것을 제외하면 우리가 행동하고 사고하며 지향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그 훨씬 전부터 오랜 세월동안 행해져 왔고 또 고려돼온 것들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나머지 과거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조차 잊고 사는 경우가 더 많다.

한때는 유별나게 중시됐던 ‘3.1운동’도 지금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중 하나일뿐이다.

‘3.1운동’의 민족사적 의의는 당시 2천만 온 민족이 일치단결해 일제에 항거했다는 점과 그것이 비폭력이라는 한국의 독특한 투쟁방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으로 축약된다.

민족이 일치단결해 죽음을 불사하고 시위를 할 수 있었던 원천은 그 지향점이 민주시민적 민족주의였다는데 있다.

우리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의 ‘3.1운동사’ 하권과 독립기념관 각종 자료에 따르면 독립선언서가 순천을 거쳐 광양에 전달된 것은 3월 3일이었다. 하지만, 우리지역에서는 이전부터 전국에 들불처럼 일어났던 3.1운동에 발맞춰 지역 유지 인사들 사이에는 이미 풀뿌리 민중 운동이 움트고 있었다.
 
이는 당시 인근 섬진강변 경남 하동군의 격렬한 운동이 불을 당겼다.

옥룡면 추동마을 정성련(1879~1923)은 1919년 3월 27일 광양읍 장날에 단독으로 독립만세운동을 거사하기로 계획해 태극기 3매를 만들어 거사일인 장날 장터로 나가서 수백 명의 장꾼 앞에서 태극기를 장대에 메어 머리 위에 높이 들고 흔들며, '만세 만세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하다가 체포됐다.

그는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같은 해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또 옥룡면 죽림마을 출신인 정 귀 인(1885. 1. 12~1946. 3. 29)은 광양군 인덕면(仁德面)에서 1919년 4월 4일 서경식(徐璟植)·박용래(朴龍來) 등과 함께 장날을 이용해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동지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歲)'라고 쓴 큰 기를 만들고 태극기를 준비하여, 광양면(光陽面) 읍내리(邑內里)에서 1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그해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진월면 송금리 송현마을 출신인 임태일(1899. 9. 9~1959. 11. 5)도 1919년 4월 15일 진월면 송금리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 서당 학생들과 같이 태극기를 제작하며 주민들에게 통문을 보내는 등, 준비를 갖추고 이날 진월면 선소리 무적섬에서 시회(詩會)를 가장(假裝)해 독립만세운동을 거사하려다가 일군헌병에 체포됐다.

 그 또한 같은 해 5월 8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옥룡면 산본의 서 경 식(1886. 4. 8~1938. 2. 21)은 1919년 4월 4일 광양군 인덕면(仁德面)에서 박용래(朴龍來)·정귀인(鄭貴仁) 등과 함께 장날을 이용해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와 태극기 등을 만들어 거사준비를 갖추고 광양군 광양면(光陽面) 읍내리(邑內里)에서 1천여 명의 시위군중을 규합해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펴다가 일경에 체포돼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밖에도 3.1운동과 관련된 독립유공자는 무수히 많다.

또한 독립기념관은 광양읍 유림회관에 있는‘광양5의사 3.1운동기념비(光陽五義士三一運動紀念碑)’와  옥룡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광양7의사 3.1운동기념비(光陽七義士三一運動紀念碑)’, 옥룡면 추동마을의 ‘의사하동정공성연3.1운동기념비(義士河東鄭公星鍊三一運動紀念碑)’를 우리지역 3.1운동과 관련된 독립운동 유적지로 지정해 두는 등 이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시에서는 이런 지역자존의의 기치를 드높였던 선열들의 위업을 기리고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3.1절 기념식 하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3.1운동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정귀인의 손자 정진기(61)씨는 “할아버지를 비롯한 독립투사들을 기억하는 광양시민들이 얼마나 있을까 마는 후손으로서 광양시에 이를 추모하는 행사가 지금껏 없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며 “우리지역에 추모행사가 있다면 기꺼이 참석해  지역주민들과 자라나는 학생들이 우리지역에서 일어 났던 독립의 열기와 의지를 느끼고 배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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