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시의회와 포스코, 프로레슬링
[기자수첩] 시의회와 포스코, 프로레슬링
  • 김성준 기자
  • 승인 2023.06.12 08:30
  • 호수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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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기자
김성준기자

프로레슬링은 정해진 링안에서 상대와 격투를 펼쳐 3초간 상대를 일어나지 못하게 하면 이기는 스포츠다. 그러나 기량을 겨루고 승패를 가르는데 의의가 있지 않고 서로 약속된 틀 안에서 연기력을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순수 스포츠가 아닌 일종의 ‘쇼’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광양시의회와 포스코가 ‘정비자회사’를 놓고 벌여온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마치 잘 짜인 프로레슬링을 한편 본 듯한 느낌이 든다. 포스코가 정비자회사를 설립한다고 하자 시의회는 역사상 최초로 광양제철소본부를 찾아 집회 선언과 기자회견을 열며 지역사회 주목을 받았다. 상대와 합의되지 않은 기술을 걸며 ‘쇼’의 시작을 알렸다. 포스코는 언뜻 당황한 듯 했지만 원론적이고 정석적으로 받아쳤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후 지지부진한 ‘쇼’가 이어졌다. 광양시의회는 출근길 집회, 1인 시위 등을 두 달 동안 지속했고 이와 별개로 포스코는 정비자회사 설립을 위해 정해진 수순을 밟아갔다. 대치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포스코 직원의 막말 논란이 불거지며 지역 여론이 반(反)포스코로 돌아서는 변수도 발생했다. 몇몇 의원들 사이에선 ‘서울 본사 상경’이나 ‘삭발’ 등 보다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지만 흘러가는 이야기에 그치고 말았다. 

이 지루한 ‘쇼’는 지난달 30일 포스코가 정비자회사 설립을 이틀 앞두고 설명회를 열며 클라이맥스로 향했다. 

포스코는 언제나 그랬듯 아주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기술로 나섰다. 기존부터 꾸준히 밝혀온 “지역 피해는 없을 것이며 직원 처우도 개선될 것이고 지역 소통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에 약간의 구체적인 데이터를 첨부했다.

광양시의회 몇몇 의원들은 강력하게 ‘문서화’를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포스코는 거절 의사를 밝혔다. 아울러 문제가 되었던 포스코 직원 막말에 관해서도 “사적인 자리의 발언이라 회장 사과는 무리다”는 입장을 보이며 개운치 않게 종료됐다. 

그리고 지난 8일 이윽고 길고 길었던 ‘쇼’가 끝났다. 집회 종료 선언과 함께 진행된 기념사진 촬영에선 마치 ‘쇼’를 성공적으로 마친 레슬러들이 웃으며 포옹하듯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광양시의회가 두 달 동안 집회를 통해 얻은 건 무엇일까. 지역구매에 관한 ‘문서화’를 얻었는가? 광양제철소장 사과문 이후 추가적인 사과를 받았나? 근로자 처우를 크게 개선시켰나? 더욱 큰 문제는 시의회가 범대위 구성이나 상생협력TF 탈퇴까지 언급하며 강경하게 주장한 상생협력협의회는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실질적 결정권자인 이철호 행정부소장이 자리를 비운 ‘애매한 설명회’ 한 번을 열기 위해 두달여간 집회를 이어온 것인지 의문이 든다. 

모든 사안이 정비자회사 설립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되려 기업 입장에서는 모기업도 아니고 투자자도 아닌 제3자에게 일개 자회사 설립을 설명해야 하는 이 상황이 ‘경영권 침해’로 느껴질 여지도 충분해 보인다. 

심지어 의자를 들고 난입을 해도 모자랄 광양시는 레슬러도, 심판도, 중재자도 아닌 카메라 뒤에 있는 관객 마냥 구경만 하기 바빴다.

결국 무승부로 종료됐지만 가장 중요한 ‘상생협의회’는 어느새 뒷전으로 가버린 ‘쇼’를 보며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다. 다가올 ‘지역상생협의회 TF회의’에서는 ‘쇼’가 아닌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진정한 지역소통과 상생협력을 위한 방안이 논의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