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동시이야기] 물 이야기
[융합동시이야기] 물 이야기
  • 광양뉴스
  • 승인 2023.06.25 19:44
  • 호수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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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5. 물의 여행

물안개


이른 아침 겨울강에 

물안개가 피어나고 있어요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어요

물고기들이 추울까 봐


누군가 따뜻하게 

불이라도 지피나 봐요


물안개는 자꾸만 

날아 날아 올라가요
 

늦장부리는 산 너머 아침 해를

낑낑 끌고 오려나 봐요

 

박행신 동시작가
박행신 동시작가

물안개와 포크

포그가 준이 할머니 집에 아예 눌러앉아 버린 것도 물안개가 두터운 날이었단다.

포그는 너무나 앙증스럽고 귀여운 유기견 강아지였다. 물안개가 낀 날 우리 마을에 나타났다고 해서 ‘포그’라고 부르던 게 그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우리 마을은 유난히도 물안개가 많았다. 저 아래 저수지 때문이라고 했다. 물안개가 짙은 날에는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포그는 그렇게 물안개가 짙은 날이면 그 물안개를 부스스한 털에 잔뜩 짊어지고 희미하게 나타나곤 했다.

포그가 골목길을 아장아장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우리들은 먹이거리를 챙겨 들고 포그를 따라나섰다.

“포그! 포그! 이쁘지? 이리 와 같이 놀자. 응?” 

우리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애교를 부렸지만, 아무런 대꾸도 없이 준이 할머니 집 대청마루 밑으로 쏙 숨어버렸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포그가 꼭 할머니 집 대청마루로 숨는데요, 저 포그하고는 어떤 관계예요?”

“어떤 관계는 어떤 관계, 난 잘 알지도 못하는 강아지란다.”

하지만 우리는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준이의 친할머니가 아니었다. 밭에서 일하다가 물안개비 흠뻑 둘러쓰고 돌아와 보니 대청마루에 유모차와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유모차에는 예쁜 아기가 포대 속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고, 포대 위에 박준이라는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가 놓여 있었다. 

깜짝 놀란 할머니는 대문 밖으로 허겁지겁 나와봤지만 짙은 물안개뿐이었다. 

누군가 아기와 강아지를 대청마루에 두고 간 것이었다. 할머니는 아기와 강아지를 키우기로 했다. 강아지는 미간에 까만 점이 있어 점순이라 불렀다.

할머니의 정성스럽고 따뜻한 보살핌 속에 준이와 점순이는 잘 지내게 되었다. 둘은 형제처럼 늘 붙어 다녔다. 준이가 학교에 가면 따라가려고 떼를 써서 목줄에 매달아 놓아야만 했다.

준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할머니 곁을 떠나고 말았다. 물안개 흠뻑 젖어 밭에서 돌아오니 방안에 웬 편지가 놓여 있었다. 안경을 쓰고 읽어 보았다. 준이 엄마의 편지였다. 할머니 몰래 준이와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단다. 준이가 알면 절대 떠나지 않을 것 같아, 잠시 볼 일이 있다면서 같이 가자고 했단다. 이렇게 아무 말씀도 없이 준이를 데리고 간 죄를 널리 용서해 달라고 했다. 꽤 많은 돈도 들어있었다.

할머니는 어둠이 천장에까지 꽉 차오르는데도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점순이도 눈치채고 할머니를 지키려는 듯 방문 앞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지 며칠 후에 점순이마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할머니는 점순이를 찾지 않았다. 분명 준이를 찾아 나섰을 것이고, 당연히 만나서 같이 잘 살 것이라 믿었다.

점순이가 집을 나간 지 일 년 남짓 되었을까. 물안개가 깊이 낀 날이면 가끔 강아지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 대청마루 밑으로 쏙 들어가곤 했다. 아이들이 따라 들어와 함께 놀자고 불러댔지만 소용없었다. 그게 포그였다.

어느 날 아이들이 다 가고 조용해지자 할머니는 마루 밑에서 나온 포그를 손짓으로 불렀다. 

의외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소곳이 다가왔다. 머리를 쓰다듬다가 갑자기 손을 멈추었다. 미간에 보일 듯 말 듯 까만 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