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리를 보여주세요”
“당신의 소리를 보여주세요”
  • 김성준 기자
  • 승인 2023.07.02 17:54
  • 호수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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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그들만의 고유한 ‘농문화’이해 필요
비장애인 배려와 이해 ‘필수’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 ‘기대’

 

지난달 광양시의회에서 박문섭 의원이 발의한 ‘수어 활성화 조례안’이 통과했다. 수어통역 서비스가 이전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광양시수어통역센터를 찾았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고인숙 실장의 명함에 있는 ‘당신의 소리를 보여주세요’란 글귀가 눈에 띄었다. 

고인숙 실장은 광양시수어통역센터 설립 전부터 ‘수어통역사’로 활동해 왔다. 수어통역센터가 2008년에 설립된 걸 감안하면 벌써 15년이 넘게 활동해 오면서 수어통역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관련 조례가 통과돼서 더 바빠지면 어떡하냐고 묻자 “어쩔수 없죠”라더니 그래도 수어에 대한 인식이 더욱 퍼질 수 있기 때문에 잘됐다며 환하게 웃는다. 

수어통역에 대한 인식이 희미하던 과거에는 자리를 잡지 못해 곤란한 상황도 많았다. 손이 잘보이는 위치를 찾아야 하는데 자리가 좁아 구석지에서 통역을 하기도 하고 무대 단상과 겹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토론회같이 여러 사람이 대화하는 자리라면 더욱 어렵다. 미국은 토론자 한명 당 수어통역사 한명이 배치돼 청각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쉽지만, 한국은 통역사 한명이 모든 토론자를 통역해야하기 때문이다. 통역을 하더라도 효율이 떨어지고 아예 시청을 포기하는 사람도 생긴다. 

고인숙 실장은 “그래도 센터 초창기에 비하면 청각장애인과 수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넓어졌다”며 “예전엔 행사 무대에서 통역하기도 머쓱했는데 요즘에는 사전 리허설을 진행하기도 하고 위치선정에 대한 의견도 거의 다 반영해 주신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농문화’라 불리는데 아무래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문화의 차이가 있다.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이 조금씩 달라 통역을 해오면서 힘든 일도 많다. 

특히 법원이나 경찰, 병원 등에 동행해 통역을 할 땐 정확한 상황을 전달해야 하는데 전문 용어가 많은데다 단어만으로 사고 경위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요즘은 신조어도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있어 명확한 단어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럴 땐 온몸을 써가며 설명을 해야 하는 등 곤란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또 손동작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등이며 어깨며 안 아픈 곳이 없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대화는 괜찮지만 몇 시간이고 서서 진행해야 하는 행사 통역은 한번 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    

광양수어통역센터 수어통역사 고인숙 실장
광양수어통역센터 수어통역사 고인숙 실장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뿌듯한 순간이 고인숙 실장을 힘나게 한다. 한번은 우연히 듣게된 공공실버주택에 대한 정보로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였던 청각장애인을 도운 일이 있었다. 

그는 “기억나는 순간들이 많지만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꼽으라면 그 때”라며 “들을 수 없다는 이유로 정보의 불균형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최대한 시정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정보 전달에도 힘쓰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현재 수어통역센터에는 청인 통역사 3명과 청각장애인 중개통역사 1명 등 총 4명이 통역업무를 맡아서 하고 있다. 수요가 늘게 된다면 추가적인 인원을 고용해야 하는데 이마저 쉽진 않다. 수어통역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가 지역 내에 많지 않은 탓이다. 

고 실장은 “단기간에 취득할 수 있는 줄 알고 문의해 오신 분들도 있는데 빠르면 2~3년에서 길게는 5년이상 걸리는 분들도 계신다”며 “수어통역학과를 가진 대학교도 있을 만큼 취득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고인숙 실장은 “통역하는데 있어 화자의 말하는 속도나 정확도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청인(비장애인)들의 배려와 이해가 필수적”이라며 “앞으로 수어에 대한 활성화가 기대되는 만큼 모두가 다 어울려 사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득 이처럼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자리에서 등불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광양시가 조금 더 따듯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박문섭 의원의 조례가, 고인숙 실장의 통역이 아니라도 광양이란 이름에 걸맞게 복지 사각지대를 환히 비추길 염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