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는 광양시
[기자수첩]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는 광양시
  • 김성준 기자
  • 승인 2023.08.21 08:30
  • 호수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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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과 5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병원을 찾지 못해 응급실을 떠돌다 사망한 것이다. 이 사고들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서울과 대구라는 대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수용 가능한 응급실이 없어 환자가 사망하는 일명 ‘응급실 뺑뺑이’ 사고가 연달아 반복되자 정부와 지자체는 부랴부랴 대안을 제시하기 바빴다. 정부는 의사인력 확충 논의를 위한 전문위원회를 꾸리기로 했으며 대도시들은 병원 설립, 기존 대학병원 지원 등을 발표했다. 사정이 열악한 중소도시들도 야간, 심야 시간에 아동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속속 제시하고 나섰다.

이처럼 각 지자체들이 선제적인 대응에 나선 것과는 상반되게 광양시는 다소 느긋해 보인다. 지난 7월 광양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정인화 시장은 “현재 추진 중인 응급의료체계를 강화하겠다”며 “추이를 봐서 추가적인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소를 잃으면 외양간을 고치겠다는 말과 다름없게 들린다.

물론 대도시에서도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는 판국에 하물며 광양 규모의 중소도시가 할 수 있는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아픈 아이들을 내버려 둘 것인가?

가야 할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광양시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소아 환자들이 골든타임 내 응급실을 이용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뻔히 보이는 가시밭길일지라도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은 있는 법이다.

첫 번째는 3개 시 행정협의회나 도에 강력한 건의를 통해 전남 동부권에 소아 응급실을 운영하는 방법이다. 일단 응급실이 운영되면 정부 정책에 맞춰 추가적인 지원이나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지정 등을 노려볼 수도 있다.

이 같은 방안의 경우 유력한 후보지는 순천에 있는 병원이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타 지자체에 위치한 병원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 될 수 있지만 아이들의 생명줄을 걸고 지역 다툼을 해선 안된다.

두 번째는 소아과 의원들을 통폐합하는 방안이다. 광양시가 나서 지역 내 소아과 의사들과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나눠볼 수 있다. 이미 대도심권에서는 다인(多人) 원장 체계로 병원 규모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시 차원에서 지원 조례를 신설하고 적극적으로 나서 규모화가 이뤄진다면 응급실 운영까진 힘들더라도 진료시간을 심야 시간대까지 연장하기는 수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립 어린이병원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부산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전남 동부권에서 소아응급실이 생긴다면 수요가 상당할 것이다. 아이가 아프다면 부모들은 무조건 가까운 거리에서 1차 진료라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인근 여수, 순천, 광양, 구례, 보성, 하동 등 차량으로 30분 내에 이동할 수 있는 인구만 100만이 넘는다. 게다가 광양은 이미 ‘어린이보육재단’이 있기 때문에 재단을 통한 설립이나 위탁 운영 등도 검토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사실 소는 이미 잃었다. 각 지자체가 부랴부랴 자발적인 '외양간 수리 대책’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 증거다. 정부 방침을 기다린 후 ‘광양형 의료’를 만드는 기존 방식을 떠나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한 문제다. 신산업, 관광 랜드마크를 통한 미래먹거리도, 촘촘한 복지도 좋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시민들이 ‘소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경험이 없는 도시가 진짜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