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콜센터 노동자의 눈물… 우리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택시 콜센터 노동자의 눈물… 우리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 김성준 기자
  • 승인 2023.11.06 08:30
  • 호수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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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콜택시 콜센터, 폭언 민원 ‘도 넘어’
보호받지 못하는 감정노동자 대책 ‘시급’
안내·녹취 장비 구축, 상담원 보호해야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살면서 누구나 한번은 들어본 법이다. 잘 모르겠다면 “상담원 모두는 우리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라는 안내 음성은 들어봤을 것이다.

일명 ‘감정노동자 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2018년 10월에 시행됐다. 상담원 같은 고객 응대 노동자는 고객에게 폭언을 들었을 때 전화를 끊는 등 일시적으로 업무를 중단할 근거가 생겼다. 아울러 각 기관은 통화 연결 전 안내 문구를 통해 통화 녹음 등을 사전에 고지한다.

해당 법이 시행된 후 폭언을 일삼는 민원인들 대다수는 녹음 중이라는 안내 음성을 들으면 잠잠해진다. 녹음 내용을 근거로 고소·고발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법적 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안내 음성과 녹취 장비는 전화 상담원의 최소한 보호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광양엔, 녹음은 커녕 안내음성도 나가지 않고 매일 폭언을 들어야 하는 노동자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바로 ‘매화콜택시 콜센터’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매일 폭언과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시행된 지 5년이나 지난 ‘산업안전보건법’은 아직도 남의 나라 이야기다.

상담원은 택시를 선택할 수 없다

이들이 폭언을 들어온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 야간시간대 택시가 줄어들면서 모든 화살이 콜센터로 향했기 때문이다. 8시간씩 교대로 근무하는 중인데 저녁 시간대 근무자는 출근 전부터 심장이 두근거린다. 오늘은 제발 무사하길 기도하며 출근하지만 헛된 바람이다. 배차가 늦어지면 어김없이 욕설이 날아온다.

매화 콜센터 근무자 A씨는 “택시 배차가 가장 힘든 시간대인 저녁 8시부터 11시에는 아무 일이 없는 날이 없다”며 “전화기를 들자마자 잔뜩 화난 손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이들도 잡히지 않는 택시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걸려온 전화 내용을 토대로 택시기사들에게 안내하고 나면 갈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기사들의 몫이다. 전화에 폭언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물론 폭언을 듣는다고 해서 상담원도 어떻게 할 방법은 없다. 그들의 전화기엔 녹음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화를 끊을 수도 없다. 분을 못 이긴 사람들은 시청에 전화해 ‘세금’을 운운한다. 민원을 접수한 야간 당직자는 다시 콜센터로 전화해 ‘친절함’을 요구한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도돌이표다.

욕설은 기본, 전화 수 백통. 완벽한 ‘을’

실제 욕설 사례가 있냐는 질문에 A씨는 “욕이요? 말도 못해요”라며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이어 “이 X, 저 X 등은 그냥 나오는 말이고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은 기본”이라며 “정말 심한 경우는 성희롱을 일삼는 경우도 잦다”고 말했다.

참다못해 전화를 끊으면 다시 전화해 폭언을 퍼붓는 사례도 있다. 밤새 120여통의 전화를 반복적으로 걸어온 악성 민원인도 있다. 결국 경찰에 신고도 해 봤지만 이 악성 민원인의 혐의는 ‘업무방해’다. 밤새도록 전화를 걸어 욕설을 해대던 악성 민원인은 다음날 죄송하다며 치킨을 사들고 콜센터를 찾아왔다. 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각서와 함께 선처를 구하면서..

심지어 상담원에게 심한 욕설을 일삼는 택시기사도 있다. 대부분 콜 내용에 담긴 목적지로 갔더니 손님이 없었다는 이유다. 하지만 콜택시를 호출 후 손님이 어디로 움직였는지 상담원이 알 방법은 전무하다. 이용객, 택시기사, 시청 모두에게 완벽한 ‘을’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화콜택시는 통합 운영된 지 10년이 지났고,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시행 5년이 지났음에도 말이다.

음 전화기, 알아서 설치하라니..

A씨는 인터뷰 내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가장 시급한 개선사항으로 녹음 기능이 탑재된 전화기를 꼽았다.

그는 “통화에 녹음된 내용을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며 “고소나 고발까지 가는 사례는 극소수겠지만 법적인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폭언이 대폭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예산이 문제다. 매화 콜센터는 운영비 일부를 시에서 지원받는다. 대략 월 2500만원선인데 대부분 인건비로 사용된다. 애초에 비영리법인으로 설립된 매화 콜센터가 수익을 창출해 설비를 교체하긴 요원한 일이다.

지난 제322회 임시회에서 박문섭 시의원이 시정질의에서 해당 내용을 설명하며 “필요하지 않겠냐”고 지적하자 정은태 안전도시국장은 “콜센터 지원금을 보조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문제는 콜센터 운영 법인에 있다”고 선을 그었다.

통화 녹음과 안내 문구를 설비하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500만원 안쪽. 운영 법인이 설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광양시는 2021년 운수종사자들을 위한 제복을 지원하는데 1억 5000만원, 내비게이션 교체지원에 5000만원 등을 지원했다. 시는 택시 업계에 콜비, 카드수수료, 통신료 등 운영 전반에 대한 지원은 물론이고 택시 교체, 블랙박스 교체, 네비게이션 교체, 제복 등 설비 예산도 주기적으로 편성하고 있다.

상황 여전하자 지자체별 대책 마련

전국적으로 감정노동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로 1000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임금 근로자의 1/3을 넘어서는 수치다. 이들은 보호하기 위한 법이 제정된 후에도 사실 현장 내 변화는 미미한 수준이다. 한 설문조사 결과 감정노동자 10명 가운데 6명은 ‘회사가 민원인 갑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사실상 가해자 처벌에 대한 강제성이 없는데다 사업주의 조치에 초점이 쏠려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반복되자 지자체나 기관 차원에서 대처법을 별도로 마련하고 나선 곳도 점차 늘고 있다.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에 따르면 지자체 254개 중 76곳이 감정노동자 보호 취지의 조례를 만들었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년부터 서울시 내 모든 초등학교에 녹음이 가능한 전화를 배포하기로 했다.

최근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 등 악성 민원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자체적인 대응책을 강구한 것이다. 이밖에도 서울, 경기, 경남, 대구 등 광역지자체들은 감정노동 종사가 권리보호센터를 설립하고 감정노동교육, 1:1심리상담, 마음 돌봄 치유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광양시는 별도로 감정노동자를 위한 보호책이 없다. 순차적으로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실태조사나 심리상담 운영 등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촘촘한 복지망으로 사각지대를 없애 감동시대를 열겠다는 지자체라면 결코 전화기 너머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