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동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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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뉴스
  • 승인 2023.11.10 17:43
  • 호수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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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신 동시작가
박행신 동시작가

화산 이야기

4-2 4. 화산과 지진

어떡해요

 

지구 옆구리가 펑 터지고 말았대요

불덩이들이 덩달아 날아다니고

하늘 높이 검은 구름이 피어오르고

뜨겁고 시뻘건 피가 

산자락 타고 줄줄 흘러내린대요

 

새들이야 훨훨 날아 도망갈 수 있지만

저 꽃과 나무들 어떡하지요?

다람쥐 토끼 노루는 허둥지둥

어떡하지요?

 

계곡으로 흘러들면

맑디맑은 물고기들은 어떡하지요?

엉거주춤 돌 밑의 가재는

어떡하지요?

 

119아저씨,

어떡해요?

어떡해요?

 

가람이와 아빠

“가람이 어머니세요? 가람이가 학교에 오지 않아 전화드렸습니다.”

“예? 학교에 오지 않았다구요? 분명 가방 메고 나갔는데요.”

깜짝 놀란 목소리가 전화기 저쪽에서 덜덜 떨었다. 전화를 끊고 아이들에게 등교하면서 가람이를 본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럼, 가람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교통사고? 유괴? 나는 그런 생각 자체가 끔찍스러워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걱정과 염려로 불안했지만 가람이 어머니께서 찾아 연락한다고 했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가람이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람이를 찾았어요. 소방서 옆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 있더라구요.”

“찾으셔서 다행이네요. 저도 걱정 많이 했습니다. 근데 왜 거기로 갔답니까?”

“우리 가람이와 친구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나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데 아이들이 놀린다고 학교에 가기 싫다고만 하네요.”

“잘 알겠습니다. 제가 확인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퍼뜩 얼마 전의 일이 떠올랐다. 자기 부모님들의 하는 일이나 자랑거리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한 사람씩 차례로 발표하던 중 가람이 차례가 되었다.

“우리 아빠는….”

말을 막 시작하자마자 평소에도 끼어들기 잘하는 남자아이가 큰 소리로 가람이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니네 아빠 없잖아. 죽었잖아!”

그 순간 가람이는 까맣게 질리는 듯싶더니 온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깜짝 놀라 얼른 그 아이의 말문을 막고 주의를 주었다. 가람이 아빠는 소방관이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도 ‘강’의 옛 우리말인 ‘가람’으로 지었다고 했다. 물이 많은 강을 곁에 두면 늘 마음이 든든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몇 해 전에 시장에 큰불이 났는데 불 속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다 크게 다쳐서, 결국 그 때문에 돌아가시고 말았다고 했다.

“아니에요. 가람이 아빠는 불에 타 죽었대요.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비록 일학년이라지만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나 역시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가까스로 수습은 했지만, 그 후로 가람이는 심하게 풀이 죽어 있었다.

그 일이 있은 지 한참 후에 가람이 어머니께서 연락이 왔다. 친구들이 수시로 아버지 없는 아이라고 놀려대며 왕따를 시킨다면서 어쩌면 좋으냐고 했다. 그동안 아이들을 타이르고 지도하긴 했지만, 끼리끼리 모여 놀면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손길이 빠진 모양이었다.

가람이 어머니께서도 여러모로 신경 쓰셨다. 가람이와 잘 어울려 지냈으면 좋겠다면서 간식을 보내주어 중간놀이 시간에 나누어주기도 했다.

“오늘 간식은 가람이 어머니께서 보내주셨어요. 다 같이 맛있게 먹고 가람이와 친하게 지내도록 하세요. 그렇게 할 수 있지요?” 

대답은 큰소리로 했지만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었다. 먹을 때는 그런가 싶었는데 왕따와 같은 문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 불이 났을 때 대피하는 소방훈련이 예고되었다. 나는 매우 좋은 기회라고 여겨 교육용 동영상을 제작하기로 했다. 가람이 어머니께 가람이 아버지 생존 시 소방관 옷을 입은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소방관들의 생활, 특히 화재의 위험을 뚫고 사람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장면 등을 편집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 화면에 가람이 아버지 사진을 넣었다. 가람이 아버지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시다 돌아가셨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소방훈련이 끝나고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와, 가람이 니네 아빠 참 훌륭한 분이시다!”

대성공이었다. 그 효과는 오래도록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