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리나라 근대교육 역사 이래 학교현장에 엄청난 태풍이 몰아친 한 해였다. 교육현장의 젊은 선생님들 생명이 수난을 당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등 교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수년간 축적되어온 것이 폭발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인간의 참된 도리를 가르치는 현장에서 교사의 말이 먹히지 않다 보니 교실현장은 질서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학부모가 상당수다. 오직 내 자식의 성적만 잘 내서 진학을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부모들도 없지 않다. 어느 사회라도 정신세계를 다루는 교육이 무너지면 우리의 미래가 밝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이러한 문제에 도전하는 과제를 교사 자신의 책임으로 알고 노력하는 교사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는 학교 관리자들의 말을 듣다 보면 교실이 혼란스러운 모습이 그려진다.
어떤 조직체든 그 구성원들의 해결을 위한 문제의식이 없이는 변화가 불가능하다. 국가적으로 교육개혁을 아무리 강조하여도 교실의 변화를 주도하는 교사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교사의 자발성이 존중되어야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자발성을 뒷받침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로 자리매김하려면 정치 지도자들의 헌신이 없이는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이 이처럼 힘들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배움이 삶이고, 변화의 시작이 깨달음”이라는 맛을 교사 스스로가 체험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말 듣지 않은 아이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를 한꺼번에 큰 소리로 훈계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지른다고, 체벌을 한다고 행동이 갑자기 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각 개인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공감하면서 시간을 갖고 한 사람씩 접근하는 길이 해결책이다. 물론 인내가 필요하고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고 정성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의 귓전에 익은 테레사 수녀의 보살핌은 우리의 어려운 교육환경을 극복해 나가는데 많은 시사점을 보여 준다. 그녀는 전 세계를 먹여 살릴 식량을 만들지도, 세계 평화를 위해 국제연합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그녀가 마주친 한 사람 한 사람에 관심을 보이고, 최선을 다해 애정을 쏟고, 정성을 다해 그들을 보살폈던 것뿐이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사람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씩만….”
이것이 바로 그녀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이 같은 방법을 교사들이 벤치마킹하여 우리의 교육현장에 도입한다면 분명히 변화가 올 것이다. 그래서 교직은 성직의 측면이 있다. 문제는 시작이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는 영혼을 울리는 진정한 만남이 문제의 해결 열쇠다.
올해의 마지막 달력을 쳐다보면서 교사와 소통이 안 되고 마음을 열지 못하는 학생의 얼굴을 생각하며 다가가 속삭여 보자.
“왜 오늘도 학교에 오는가?”, “왜 공부하는가?”를 직접적으로 묻는 것보다는 또 다른 그들의 아픔에 접근하는 새로운 만남으로 변화된 감동의 드라마가 되길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무리한 욕심일까.
필자는 최근 눈높이 교육상 수상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가지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노력하였는데도 실패하였다는 이야기는 결코 듣지 못했다. 가는 길이 험하고 고달프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심정으로 다가가는 연말이 되었으면 내일의 태양은 밝게 솟아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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