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동시이야기] 거울 이야기
[융합동시이야기] 거울 이야기
  • 광양뉴스
  • 승인 2023.12.23 17:53
  • 호수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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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신 동시작가
박행신 동시작가

4-2 3. 그림자와 거울

겁도 없이

 

겁도 없이

우리 누나 손거울이

아침 해를 가둬 보았다

 

버얼건 햇덩이가 

깜짝 놀라

따끔한 햇살들을 마구 마구 쏟아냈다

 

그 조그만 손거울은 

따갑지도 않은지

잘도 버티고 있었다

 

토끼들에게 자유를

“누나, 큰일 났어. 아빠 서울 가신 일이 잘 되셔서 우리 모두 이사 가야 한대”

학교에서 막 돌아온 누나의 손목을 잡고 내 방으로 이끌고 들어갔다.

“그게 잘된 일 아냐? 그런데 왜?”

“토끼들을 서울로 데리고 갈 순 없잖아”

“당연히 데리고 갈 수 없겠지.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이 멍충아. 그러면 당연히 내다 팔겠지. 엄마 성격 몰라서 그래?”

“내다 팔면? 그러면 잡아먹히거나, 토끼장에 갇히거나? 아 안 되지! 넌 그 소식을 어디서 들었어?”

“아까 학원 가기 전에 엄마랑 아빠랑 전화하는 걸 들었단 말야”

우리는 조그만 도시 외곽지대에 마당이 제법 넓은 한옥에서 살고 있는데, 마당 한쪽에 철망을 치고 토끼들을 기르고 있었다. 

이웃집 아저씨께서 어린이날 선물로 암수 한 마리씩을 주시면서, 토끼장을 지어주시고 기르는 법을 자세히 가르쳐주셨다. 

어느 참에 보니 암토끼의 배가 불룩했다. 새끼를 낳을 무렵이 되자 아저씨께서 수토끼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고, 대신 토끼장에 짚을 넣어주고 천으로 가려주셨다. 

“토끼는 어두운 곳에서 새끼를 낳는단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거나 만지면 젖을 주지 않는 수도 있단다”

우리는 새끼들이 무척 궁금했지만 참아야만 했다. 며칠이 지나자 아저씨께서 새끼 토끼를 조심스럽게 보여주셨다. 

어미 토끼가 자신의 몸에서 뽑은 털로 지은 둥지 안에 새끼 토끼들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다섯 마리나 되었다.

새끼 토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수토끼가 다시 우리 집으로 와 토끼장이 비좁기만 했다. 그런 토끼장에 갇혀 사는 게 불쌍해서 아저씨와 아버지를 졸라 마당 한쪽을 철조망으로 막고 널찍하게 토끼장을 만들어 놔먹이기 시작했다. 

토끼들은 어느 참에 땅바닥에 굴을 파기 시작하더니 그곳으로 드나들며 생활했다.

“토끼라는 동물은 원래 굴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단다. 위험한 순간에 오면 얼른 숨기도 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곳으로 이용하기도 한단다”

그동안 우리가 애지중지 키운 토끼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는 점도 서운했지만, 팔려가면 어떻게 될지 그 점이 더욱 염려되었다. 

“방법은 딱 한 가지야. 저 녀석들을 뒷산으로 도망치게 하는 거야”

“집토끼가 산에서 살 수 있겠어? 적응훈련을 한 적이 전혀 없는데?”

누나는 핸드폰을 꺼내 주섬주섬 검색하기 시작하더니 들뜬 소리로 말했다.

“여기 봐봐. 집토끼가 산에서 잘살고 있대.” 

나는 누나가 건네주는 핸드폰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부산 사상구 학장동 뒤편 승학산 자락에 살고 있는 집토끼들 이야기였다.

“그럼 저 집토끼들도 살아갈 수 있겠네”

“절대 도축장에서 죽게 할 수 없어. 아니 좁은 토끼장에 갇혀 살게 할 수도 없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부모님께 말씀드려볼까?”

“아냐, 그럴 거 없어. 아빠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분명 반대하실 거야. 우리가 몰래 놔 주어야 해”

“어떻게 하려고?”

“누나만 믿어. 내가 다 계획을 세워 처리할 테니까. 그동안 넌 이 일에 대해 입도 뻥긋해서는 안 된다. 알았지?”

“응, 누나. 그럴게”

나는 누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토끼들이 뒷산에서 자유롭게 맘껏 뛰어다니며 잘살고 있는 상상놀이만 즐기면 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