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보다 학식이 부족하거나 손아랫사람이라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으면서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항상 배우는 자세로 살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에 통달할 수는 없다. 모르는 것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물어서 알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모르는 것은 죄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고 나보다 아랫사람이라고 여기며 묻기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오히려 더 치졸한 행위다.
《논어(論語)》 〈공야장〉편에 나오는 공자 제자 중에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어 부자로 사는 자공(子貢)이 있었다. 스승 공자에게 하루는 “공문자(孔文子)는 어찌해 위대한 ‘문(文)’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는 민첩하며 배우기를 좋아하고 특히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호를 문이라고 한 것이다.” 비록 자기보다 못 배우고 아랫사람이라도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칭찬한 것이다.
그러나 자공은 공문자의 문란(紊亂)한 행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므로 더욱 궁금했던 것이다.
공문자는 위(衛)나라의 대부로 본명이 공어(孔圉)였다. 그가 죽자 위나라 군주는 그에게 ‘공문자’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공문자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공어의 평소 행실은 그렇게 높이 평가할만한 모범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공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승 공자에게 물었던 것이다.
공어는 태숙질(太叔疾)을 부추겨 아내를 쫓아내고 자기의 딸을 아내로 삼도록 했다. 말하자면 사위로 삼으려고 수작을 부렸다. 사위가 된 후 태숙질이 문란하여 본처의 여동생 즉 처제와 간통을 하자 공어는 태숙질을 죽이려고 공자에게 어떤 방법이 좋을지를 물었다.
그러나 공자는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못들은 척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가던 길을 재촉하였다. 그 뒤 태숙질이 송나라로 달아나자 자기 딸 공길(孔姞)을 데려와서 태숙질의 동생 유(遺)에게 아내로 맞도록 했다. 유는 형수를 아내로 맞이한 셈이 된다.
이토록 문란했던 공어에게 유가(儒家) 사회에서 호학정신이 결여된 사람인데도 ‘문(文)’이라는 시호를 하사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에 물은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그런 부분은 빼고 아랫사람에게 물어 배워가는 것만을 내세우며 말했다.
학문을 좋아하고 모르는 것은 언제나 누구에게든지 묻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즉, 알고 싶으면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상관하지 말고 기꺼이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논어》 자체가 배움으로 시작해서 배움으로 끝나는데 〈술이편〉에서 배움을 강조하는 말이 또 나온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인데, 세 사람이면 나 빼고 두 사람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배울 것이 별로 없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공자는 그 속에서 나쁜 것이라도 배워서 다른 사람에게 이것은 나쁜 것이니 행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위해 배워야 한다는 공자의 논리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 〈위정편〉에서는 애제자 자로(子路)와의 대화에서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참으로 아는 것(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之也)’이라고 했다. 이 말은 스스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여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내 지식이며 지혜라는 말이다. 요즘말로 메타인지(meta 認知)와 통하는 말이다.
자로는 제자 중 나이가 많아 때로는 친구 같았고, 용맹하며 성격이 매우 거친 제자다. 그런 자로에게 흠이 있다면 모르면서도 아는 체 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래서 깨우쳐주기 위해 이런 메시지를 주었으며, 혹 다 알지 못하면서도 모르는 것을 안다고 속이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됨을 말하고 싶었다. 공자의 사상은 학문을 함에 있어서 성실한 태도로 임하고 허위와 교만한 행동을 경계해야함을 가르치려 했다. 그런 학풍 때문에 공자는 지금까지도 만인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만세사표(萬歲師表)가 되었다.
‘불치하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크게 되려면 이렇게 겸손한 자세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모르는 것은 상대의 학벌이나, 지위, 직업, 출신성분에 치우치지 말고 아무에게나 물어 알아갈 때 사회적으로 큰 사람, 즉 큰 그릇이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