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을 선택한건 정말 잘 한일”
“농업을 선택한건 정말 잘 한일”
  • 박주식
  • 승인 2008.11.06 09:40
  • 호수 2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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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간 원예작물 재배한 시설원예의 대부 박정모 작목반장
 
“내 고향 광양에서 농업을 천직으로 삼고 흙과 함께 일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농업을 선택한 것을 한 번도 후회 한적 없으며, 지금 와서 생각하면 할 만큼 했고 농업을 선택한건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광양읍 목성리에서 1995년부터 지금까지 일본 오이수출을 선도적으로 이끌어 오며 지역 시설원예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해온 박정모 작목반장. 36년간 원예작물 재배로 그만의 큰 노하우 갖고 있는 그는 이제 광양의 시설원예 대부라 불린다.

박 반장이 처음 비닐하우스 농사를 시작한건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촌들이 옥룡에서 시설원예를 하고 있었고 군대를 제대한 박 반장이 여기에 함께 동참한 것이다.
오이재배로 시작된 박 반장의 농사는 오이 이외에도 파프리카, 토마토, 바나나 등을 재배하며 시설원예의 노하우를 쌓고 이와함께 지역실정에 가장 알맞은 작물을 스스로 터득했다.
 
오이 수출로 일본 틈새시장 진출
 
그러던 그가 일본으로 오이를 수출하게 된 건 우연한 기회에서 였다. ‘92년 박 반장은  농협과 함께 일본연수를 가게 됐고, 그곳에서 농촌 일손이 부족해 시설하우스의 오이재배 농업인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알게 됐다. 여기서 박 반장은 ‘그러면 우리가 수출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94년 일본오이 시험재배에 나서 마침내 다음해 첫 수출을 시작했다.

하지만 첫 일본 오이 수출은 오래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끝이 나고 말았다. 농가들이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신정연휴기간 동안 수출 못한 오이를 국내 판매 등으로 처분했어야 하나 이를 모아 일본에 보내게 됨에 따라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첫 번째 일본오이 수출이 실패로 끝났지만 박 반장은 새로운 수출업체를 선정해 다시 시작했다.

이후 ’95년 17농가로 출발한 광양목성수출오이작목반은 국내의 대표적인 오이수출단지로 대일 수출의 리더로 성장했다. 작목반 구성 첫해 210톤의 수출 실적도 매년 꾸준히 증가해 수출이 절정이던 2000년에는 116농가가 33만580㎡(10만평)에서 1950톤의 오이를 재배해 연간 30억 원 어치의 수출고를 올리기도 했다.
 
안정적 물량공급으로 신뢰구축
 
일본 수출에 있어 박 반장이 무엇보다 관심을 기울인 것은 신뢰 구축이었다.
일본 바이어와 계약하면 국내가격의 변동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물량공급에 최선을 다했으며 때로는 내수가격 상승에 따른 가격차로 손해를 보기도 했으나 장기적인 정책을 가지고 수출에 임했다. 바이어들과의 신뢰구축이 선행돼야 지속적인 수출과 확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작목반에서 생산된 ‘광양오이’는 현재까지 14년째 단 한 번의 클레임 발생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일본바이어와 소비자들로부터 ‘믿을 수 있는 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외에도 주기적으로 선진재배지 견학과 양액재배시설 및 친환경농법 도입을 통한 고품질 오이 생산, 시설현대화를 통한 생산비 절감 등의 노력을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들과 함께한 일본 수출은 농가의식 선진화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컸다.

농가들의 의식이 높아지고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광양수출오이작목반원들은 공동선별·공동계산을 통해 일본에서도 고품질을 인정받는 오이를 생산한다. 그만큼 자부심도 대단하다.
 
어려운 여건 속에도 수출의욕 지속
 
하지만 수출오이 재배는 국내산을 생산하는 것 보다 여러 가지 점에서 더 많은 애로를 겪고 있기도 하다. 일본수출 기간이 겨울철 2~3개월 밖에 해당되지 않아 여름철 등 공백기가 있는 데다 일본 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아 소득 면에서도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연말연시 일주일가량 국내나 일본의 노동자들이 쉬면서 수출을 하지 못함으로써 입는 손실 등은 작목반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오이의 경우 날마다 작업을 해 즉시 소화를 시켜야 신선도가 유지되는 데 이 기간 동안 판로가 막혀 속을 태우는 것이다.

여기에다 최근 유가 상승과 비료·퇴비 등 물가 상승으로 대일 오이 수출 참여 농가는 10여 농가로 줄고 재배면적도 3만4710㎡(1만500평)로 급격히 줄었다. 한창때와 비교하면 실적이 10분의 1 이하로 줄었지만 수출을 향한 의욕만큼은 꺾이지 않았다.

박정모 반장은 “10년이 넘도록 일본 수출오이를 재배해 오는 동안 많은 농민들이 내수용 오이 재배로 돌아서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며 “어디에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오이의 품질에는 자신이 있는 만큼 농협 뿐 아니라,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도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96년 작목반장을 맡아 일본 오이수출을 진두지휘해온 박 씨는 그동안 숱한 교육과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92년 시설원예를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박 씨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지난 2005년까지 20여 차례의 각종 농업인 관련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이러한 농업에 대한 박 씨의 노력과 열정은 ‘94년 새농민으로 선정돼 ’97년에 본상 받는 등 20여 기관으로부터 각종 표창을 수상했으며 2003년엔 신지식인(134호)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