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칼럼인 석지운씨 10여년간 다른 이름으로 살아 93년 전산입력과정…‘운’한자 표기가 없어 ‘은’으로 바뀌어
석씨의 이름 맨끝자는 한자로 ‘높을 운( 夽 )’이다. 당시 이 한자는 전산 입력되지 않은 한자였다. 읍사무소에서도 당연히 전산화 입력으로는 ‘석지운’을 한자로 표기할 수는 없었던 것. 그렇다고 ‘석지운(石智운)’으로 표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담당을 맡았던 공무원은 옥편과 사전을 들춰보면서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이 ‘운’을 ‘은’으로 바꿨다. ‘夽’이 고어에서 ‘은’으로도 읽혔다는 근거에서였다.
자신의 이름이 바뀐 사연을 듣고 황당해했던 석씨는 “당시 학생입장에서 이름을 바꿀만한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담당 공무원의 주장에 완강히 항변할 만한 입장이 못됐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한자는 같이 쓰되 한글 이름이 바뀐채 청년기를 보냈다. 석씨는 이후 대학생활과 군대, 사회생활을 하면서 ‘석지은’이라는 이름으로 살게 됐다.
결국 고등학교 시절까지의 친구들에게는 ‘석지운’으로, 청년기 시절 만난 사람들에게는 ‘석지은’으로 불렸다. 그는 최근 혼인신고를 하다가 “당신의 이름은 ‘석지은’이 아닌 ‘석지운’이다”고 통보를 받았다. ‘夽’이 전산표기가 가능한 한자로 등록되면서 원래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석씨는 그러나 이름을 되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쳐야 했다. 그동안 ‘석지은’으로 표기된 모든 것을 바꿔야 할 처지에 놓였다. 주민등록증부터 시작해서 면허증, 여권 등 각종 신분증과 각종 고지서의 이름을 모두 바꿔야 했다. 그는 결국 지난해 연말정산도 못받을 처지에 놓였다. 이름이 다르기 때문에 연말정산을 받을 수 없었던 것. 불편함은 이뿐 아니었다.
당분간 자신에게 돌아올 청첩장 등 우편물 대부분이 ‘석지은’이라는 이름으로 온다.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피해보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을 지에 관한 것이다. 10여년 동안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석지은’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수많은 어려움이 다가올 것은 뻔했다.
“가끔 일이 안풀릴때면 이름이 바뀌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는 그는 허탈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석씨는 당시 자신의 이름을 바꿨던 공무원이 여자인 것을 제외하고는 누군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석씨는 “당시 해당 공무원이나 행정 측에 특별히 할 말은 없다”며 “디지털 시대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희귀 한자를 사용해 발생했던 문제점으로 본다”고 말했다. 석씨는 “앞으로 개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며 “개명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신속하고 편리한 행정시스템이 갖춰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