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산을 통해 삶을 배웁니다”
인/터/뷰 “산을 통해 삶을 배웁니다”
  • 이성훈
  • 승인 2006.11.08 23:47
  • 호수 1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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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향 산악인 김태호씨
“산의 매력이요? 꼭 특별한 이유를 붙여야만 산을 좋아하는 것일까요? 산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산을 좋아하는 것일 뿐, 특별한 이유로 산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산악인 김태호(45ㆍ순천시 조례동)씨. 기자는 산에 대한 첫 질문을 하고부터 말문이 막히기 시작했다. 이른바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해 호감을 가지면 반드시 그 원인을 물어보는 것이 일상화됐다. 조금이라도 그 이유를 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 사람의 본성일까. 하지만 질문자의 예상과 달리 특별한 답변을 들지 못하면 곧 당황하게 된다.
 
이번이 그런 경우였다.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 살아서 그런지 산은 매우 익숙한 존재입니다. 늘 산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이제는 산 자체가 저의 삶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는 백운산 자락을 품에 안고 있는 옥룡면 추산리가 고향이다.

물과 공기가 우리 삶과 동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그에게 있어 산은 공기와도 같은 존재였다. “나이가 20대에 들어선 후 서서히 산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생겼지요.
 
 그때부터 앞으로 산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느덧 산악인이 된 그는 전국에 있는 산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 89~90년에는 백두대간 종주를 통해 우리나라 산을 하나둘씩 체험해보기도 했다.

꾸준히 산악회에서 활동하며 산과의 인연을 맺던 그는 드디어 해외원정을 결심하게 된다. 지난 1999년 파키스탄 히말라야에 있는 가셔브룸 Ⅱ(8035m) 원정이 그것이다. 히말라야 산맥은 산악인이면 누구나 한번쯤 등정을 하고 싶어하는 곳이다.

가셔브룸 Ⅱ는 파키스탄 카라코람 발토로 무즈타그 산군에 속하며 1956년 모라벡 대장이 이끄는 오스트리아대가 처음으로 등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균관대팀이 91년 재도전해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한 바 있다.

지난 99년 6월 14일 김태호씨는 8명의 원정대원(등반대장 최호)과 함께 가셔브룸 Ⅱ 고도 5200m에 베이스캠프를 꾸리고 본격적인 등정에 나섰다. 이후 7월 7일 대원 5명이 제1차 정상 등정에 나섰으나 악천후로 실패, 7500m 지점에서 포기해야만 했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대원들은 10일 제2차 정상 등정에 성공, 대원 1명이 8035m에 오른 후, 18일 대원 5명중 3명이 등정에 성공했다. 

“이 등정을 위해 약 2년을 준비했지요. 100ㆍ400m 전력질주 등 기초체력은 물론, 각종 스트레칭으로 기본기를 다져나갔습니다. 또한 지리산, 고흥 팔영산, 경남 산청 웅석봉, 영암 월출산 등지에서 능선 종주 및 비박(텐트 없이 하는 야영), 하중 훈련 등 철저히 대비했지요.” 

정상에 등정한 느낌은 어떠했을까.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빙하길이 마치 고속도로처럼 쫙 깔려있더군요. 온 세상이 내 눈앞에 있는 광경을 보니 그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더군요. 사람들이 이 희열감을 느끼기 위해서 정상에 오르나봅니다.” 그러나 완등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우선 상상을 초월하는 눈바람이다. 살을 에는 듯한 극한의 고통에서 오는 추위와 눈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감, 등반도중 크레바스에 추락할 위험 등 주변에 있는 모든 조건이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이었다. “한번은 베이스캠프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눈사태가 일어났지요. 그 소리가 어마어마하더군요.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대했습니다.

동상은 기본이고 음식도 맞지 않아 체력도 소진되고 무산소 등정을 하는 까닭에 호흡도 쉽지 않은 등정이었습니다.” 정상 등정도 잠시, 대원들에게는 또 하나의 거대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산의 위험이었다. 체력을 모두 소진한 탓에 하산한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 이상 힘든 일이었다. “실제로 산악 사고의 약 80%는 하산하는 과정에서 생깁니다. 체력도 떨어졌을뿐더러 정상에 오른 기쁨에 다소 긴장이 풀리지요.

흔히 ‘다리가 풀린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하산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부상의 위험이 상당합니다. 완전히 하산하는 마지막 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는게 가장 중요해요.” 그는 가셔브룸Ⅱ 완등 후, 하산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어버릴 뻔한 일화도 소개했다. “하산하다가 약 80m 정도 추락했었어요. 그 순간이 약 3,4초 정도 였어요. 그런데 그 짧은 추락과정에서 제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군요. 그동안 잘못한 일 등 살아왔던 나날이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지더라고요.” 김씨는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었다고 소회했다.

그는 이후 2003년 에도 에베레스트 초오유(8201m) 등정에 성공했다.

그는 지금도 백운산을 한달에 두어 차례 등반한다. 김씨는 늘 백운산과 함께 했던 터라 백운산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고 있다. “광양에 백운산이 있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정상에 오르면 지리산 자락에서부터 남해까지 훤히 보이지요. 고향 사람들이 간혹 다른 지방의 산을 먼저 찾는 경우가 많아요. 백운산은 어디에 내놔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백운산을 사랑하고 아껴야 합니다.”

김씨는 등반시 기본 장비만 제대로 갖추면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청바지나 운동화가 아닌 등산복과 등산화를 신고 배낭에는 간단한 간식을 챙길 것을 권유합니다. 물도 꼭 챙겨야합니다. 몇몇 등산객들은 편하게 갈려고 맨몸으로 등반한 후, 주변 사람들에게 물과 음식을 얻어먹는 경우가 있는데 예의가 아니지요. 자기것은 자기가 챙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등반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등산객들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자연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아요. 정말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일부 등산객들 때문에 산악인 전체가 욕을 얻어먹는 일이 다반삽니다.”

그는 내년에 알프스를 등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차근차근 차질없이 준비하고 있다. “해외 원정의 경험을 살려서 등정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인터뷰가 끝난후 산악인 김대호 씨는 또다시 국내 산행 일정 계획을 세우고 하나 둘씩 점검해나가고 있었다.
 
그는 산이 좋아 직업도 등산용품점(순천, 블랙야크)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