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학’12일 개봉…광양매화 유명세 굳힐듯
‘천년학’12일 개봉…광양매화 유명세 굳힐듯
  • 귀여운짱구
  • 승인 2007.04.12 10:23
  • 호수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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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매화마을, 송화가 호시절을 보내는 무대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드디어 12일 전국 극장가에서 선을 보인다.
광양매화마을의 흐드러진 매화의 풍경이 담긴 <천년학>을 미리 살펴본다.

임권택 감독은 신작 <천년학>에서 또 한 번 사라져가는 한국의 소리를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일까, 알려진 대로 <천년학>은 여러 면에서 <서편제 2>라고 할 만하다.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하고 있고 한국의 고유한 소리가 등장하며 무엇보다 동호(조재현)와 송화(오정해)가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천년학>에서 주요하게 쓰인 공간은 모두 세 군데. 아버지 유봉(임진택)과 함께 유년 시절의 송화와 동호가 함께 머물렀던 곳인 동시에 이제는 쇠락해 황폐하게 변한 선학동 주막. 유봉의 죽음 이후 지방을 전전하게 된 송화가 잠시 호시절을 보내는 광양 매화마을의 백사 영감 집, 그리고 앞 못 보는 송화가 불편 없이 소리를 할 수 있도록 동호가 지어주는 진도의 송화 집이다.
 
매화마을…송화 생애 최고 호사를 누리는 곳
 
동호가 떠난 후, 그리고 아버지 유봉을 여읜 후 선학동 주막을 떠나 앞 못 보는 눈을 가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송화에게도 잠시나마 편안하게 지내는 시절이 찾아온다. 춘향가의 ‘춘향자탄’ 대목을 부르는 송화의 소리에 매료된 관매도 술집 주인 백사 영감의 첩으로 들어가게 된 것. 그곳에서 누이 송화와 잠시 재회했던 동호는 훗날 “누나는 어쩌면 생애 최고의 호사를 누렸다고 할 만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지요”라며 그 당시를 회상한다.

백사 영감의 집은 광양 매화마을에 위치한 청매실 농원 안에 지은 초당에서 촬영됐다. 백사 영감이 지방의 갑부라는 점에서, 노인네가 운치 있게 산다는 전제하에 임권택 감독은 호사하는 행당들이 절경 속에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위치에 집을 지어줄 것을 원했다. 주병도 미술감독은 툇마루 앞으로는 섬진강 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정자 주변으로는 매실나무와 매화나무가 푸근하게 둘러싸고 있는 곳에 초가집을 지었다.

초당이 세워진 실제 밭이 기울어져 있어 땅을 깎아 터를 마련했고 섬진강과 매화나무가 모두 보이게끔 카메라 위치도 조절할 수 있어야 했기에 지반을 깊게 파 부감으로 촬영하면 웅크린 형태가 되도록 했다. 그럼으로써 백사 영감의 집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면 그들만이 호사를 누리는 장소로 여겨지게끔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이 초당은 기와집을 지어 그 위에 초가를 얹어놓은 것.

당시의 부자들은 1년에 한 번씩 갈아줘야 하는 짚이나 새 따위로 이엉을 엮는 대신 최소한 5~6년은 유지되는 갈대로 지붕을 이었다고 하니, 주병도 미술감독 역시 이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집 앞으로 난 길은 안빈낙도의 느낌이 들도록 양 옆으로 돌을 쌓아 죽 이어 붙였다.

하지만 원래는 농원이었던 곳이라 토질이 좋은 흙만 깔려 있어 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25km나 떨어진 곳에서 공수해올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돌을 옮기는 과정에서 포클레인을 사용할 경우 생채기가 생길 우려가 있어 고생스럽지만 돌 하나하나에 모두 소방 호스를 묶어 기중기로 옮기는 등 번거로운 작업을 수행해야 했다.

<천년학>에서 광양 초가 세트가 중요하게 다뤄진 대목은 백사 영감의 임종 장면에서였다.
특히 이 장면에서 매화나무는 더욱 중요했다. ‘좋은 시절도 지나고 나면 그뿐’이라는 매화의 의미는 송화의 삶의 한순간을 시각적으로 상징한다. 백사 영감의 임종 장면에서 포착된 바람에 흩날리는 매화 잎은 송화의 호시절이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됐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꽃이 너무 일찍 피는 바람에 제 시간에 맞춰 촬영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다시 꽃이 만개하기까지를 기다리려면 1년을 소비해야 하는 상황. 어쩔 수 없이 가짜 매화꽃을 심고 인조 잎을 붙여 한시(漢詩)와 같은 유려한 장면을 얻어낼 수 있었다.

<천년학>은 결국 동호와 송화의 애절한 사랑을 ‘집’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다. 길을 나섰던 <서편제>와 달리 <천년학>에는 송화와 동호의 추억이 어린 선학동 주막집, 백사 영감 초가집, 진도의 송화 집과 같이 정적인 공간이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소리와 북채가 하나가 돼야 완벽한 형태의 판소리가 완성되듯 <천년학>에서 송화와 동호의 사랑은, 소리와 공간이 만나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광양의 풍경이 흐드러지게 담긴 ‘천년학’을 보러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