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화유산, 광양문화의 내·외연 확대하는 길
근대문화유산, 광양문화의 내·외연 확대하는 길
  • 최인철
  • 승인 2009.01.14 18:20
  • 호수 2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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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권 행사, 개발제한…잘못된 인식 전환 필요

고대유적이나 문화재가 거의 전무한 광양시의 입장에서 근대문화유산은 남다른 의미다. 과거 문화재를 만들어 낼 수 없지만 현존하는 근대시기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 관리하는 방안이 광양시 문화유산의 양적 질적 확대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근대문화유산은 근대시기에 조성, 형성된 문화유산으로 건축물뿐만 아니라 근대산업유산, 근대역사자료, 미술공예 품 등과 같은 동산문화재도 포함된다. 즉 문화재의 개념이 아니라 문화유산의 개념이다. 등록문화재 제도는 문화재 지정제도의 보완제도로 신고제와 지도, 조언, 권고를 기본으로 하는 문화재 보호제도다.

다시 말해 건조물 또는 시설물 중 국가나 시도지사가 지정한 지정문화재가 아닌 것이 대상이 된다. 그 문화재로서의 가치에 비추어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히 필요한 것을 폭넓게 등록하고, 완화된 보호조치를 취함으로써 소유자의 자주적인 보호에 기대하는 제도다.

근대문화유산은 보존과 함께 자유로운 활용이 가능하다. 외관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내부를 현실의 일상생활에 맞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또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간직한 문화재들을 관광자원화해 지역사회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 대상도 다양하다. 건축물뿐만 아니라 다리, 수문, 터널, 등대 등 산업토목유산까지 포함된다. 등록기준도 50년이 경과한 건조물 또는 시설물이 대상으로 하되 50년이 되지 않더라도 보호할 가치가 있고 시급히 보호조치가 필요한 경우로 확대된다. 역사적 가치, 학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근대사의 기념물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큰 것, 지역의 역사 문화적 배경이 되고, 그 가치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 한 시대의 조형의 모범이 되는 것도 포함된다.<편집자 주>

광양시는 현재 윤동주 유고가 발견된 정병옥 가옥과 서울대 남부연습림 관사가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돼 관리보존대책과 일련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정병옥 가옥은 항일민족시인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윤동주를 광양이 브랜드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와 활용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다.

광양시 최상종 학예연구사는 “많지 않는 광양시 문화유산의 현실에서 볼 때 근대문화유산이 가지는 의미는 여타 시군에 비해 훨씬 크다. 또한 등록 가능성이 있는 유산도 범위도 다양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광양시 문화유산의 내연과 외연을 모두 확대하고 폭을 넓히는데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건축물 뿐 아니라 인물과 학술적 자료에 대해서도 발굴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중요한 것은 등록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보존관리하고 활용해야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덧붙였다.

여기에다 옛 읍사무소와 옛 진월면사무소, 해태조합 관사 등에 대해 근대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또 경전선 복선화사업에 따라 그 활용가치를 다한 옥곡역과 진상역의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도 물밑에서 진행 중이다. 문화유산에 대한 광양시 행정이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옛 읍사무소에 대한 문화재 전문가들은 역사성과 건축양식에 비추어 복원을 통한 활용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문화재청 전문위원인 전남대 건축학부 천득염 교수는 “옛 읍사무소는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근대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라며 영구 보존을 권유했다. 순천대 박물관장인 남현호 교수는 “1940년대 건물 유형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어 건축양식이나 역사성으로나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옛 진월면사무소에 대한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 교수는 “옛 진월면사무소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돌출된 중앙부 출입문이다. 다른 벽체와는 달리 화강석으로 마감해 중심성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해방 전 일제 강점기 관공서 건물유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출입문 상단에서 보이는 원형고리의 기하학 문양은 건축가의 미학적 감성을 충분히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평했다.

특히 옛 읍사무소와 진월면사무소는 근대 관공서의 전형을 보여주는 몇 남지 않는 건축물로 손꼽힌다. 한 자료에 따르면 근대관공서 가운데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곡성군 삼기우체국과 구례읍사무소, 남제주군 대정면사무소, 홍천읍사무소, 파주군 구 장단면사무소 등 8곳에 불과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광양제철고 이은철 교사는 “이들 건축물은 근대문화유산으로써의 역사적 가치는 물론, 옛 광양지역 행정관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라며 “광양지역 근대문화의 한 자산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근대문화유산의 활용과 이를 둘러싼 문제들

그러나 근대건축물은 성립시기가 오래지 않고 또 그 형성시기에 있어서 민족적 성격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보호가치에 대한 사회일반의 합의가 어렵다는 점은 근대문화유산 등록의 한 과제다. 또 국민들의 경제, 문화, 생활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어 규제를 수반한 제도를 통해 보호하는데 여러 가지 장애가 따른다. 더구나 학계나 사회분야에서도 이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미흡해 재개발 등 사회 변동과정에서 역사성과 기록이 변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다 건물이 개인소유일 경우 보존 활용과 개인의 경제적 이익이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점이다.

광양시도 예외는 아니다. 문화유산과 관련된 건물소유자나 토지소유자와의 충돌은 물론 각종 사업과정에서 집단민원으로 인한 마찰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활용계획이나 정비계획이 세워 놓고도 실제 예산을 투입하기가 곤란해 원활한 사업추진에 장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바로 국도비 예산확보 과정에도 반영돼 사업추진 자체에 영향을 받는다. 광양시 관계자는 “각종 민원이나 보상액 협상 난항에 따라 사업추진에 막대한 차질을 빚을 때가 많다”며 “개인소유의 소중한 건물이나 토지일 수 있지만 문화유산을 전 시민에게 공유한다는 열린 마음의 자세가 아쉽다”고 말했다. 일례로 정병옥 가옥의 개보수와 매입, 활용에 있어 건물소유자와 이견을 보이면서 사업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또 옛 읍사무소는 주변 상권 활성화 논란을 빚으면서 정작 핵심사안인 문화재적 가치는 논제에서 벗어난 형국이다.

이은철 교사는 “최근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보존관리에 대한 목소리가 또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사유재산과 경제적 수익창출 입장이 맞물리면서 손쉽게 철거되고 훼손되거나 관리가 쉽지 않아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절실하다”며 “근대의 것이 시간이 오래 지나고 또 잘 보존했을 때 그것이  먼 훗날 유적이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대문화유산 등록제로 인해 재산권행사나 개발제한으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왜곡된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천득염 교수는 “문화재로 지정되면 공적 개발과 개인의 재산권 행사가 어렵다는 생각에 오히려 소멸시켜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는 다르게 문화재의 외관보호를 주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개발제한의 성격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더나가 “내부 사정에 따라 자유로이 변경하거나 수리수선이 가능하고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간직한 이들 문화재를 관광자원화해 지역사회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역사는 단절 없이 만들어지고 또 이어진다. 이는 근대문화유산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건축물 역시 문화재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지어져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