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사를 마친 노 교장의 손수건에 눈물자국이 묻어 있었다. 작은 글씨가 빼곡히 적힌 세 장이 넘는 회고사였지만 37년의 역사를 갈무리하기에는 너무 짧았다. 회고사를 듣고 있던 쉰 살 동문들의 눈시울에도 결국 물기가 내비쳤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던 저문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3월 1일 공식 폐교되는 옥룡중학교(교장 김진윤)의 마지막 졸업식이 지난 13일 교정에서 개최됐다. <본지 2월 11일자 1·11면 참조>
이날 졸업식에는 김진윤 교장을 비롯한 교사와 14명의 학생 그리고 학부모, 동문과 지역주민 등이 참석해 애잔한 심정으로 졸업식을 지켜봤다. 모교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동문들의 얼굴은 무거웠다. 침통함이 가득했다.
후배들의 마지막 졸업식에는 특히 이완(광양시청 광영동 근무)· 라상채(학교 운영위원장) 씨, 그리고 이평호(동광양농협 근무) 씨 등 이 학교를 첫 졸업생들이 참석해 모교의 마지막 일정을 지켜봤다. 이들은“착잡하고 안타깝다”며 “아이들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지만 막상 후배들의 마지막 졸업식을 지켜보니 가슴 한켠이 허전하다”고 말했다.
옥룡중학교의 폐교결정은 정부의 농촌학교에 대한 정책 때문이다. 20명이 넘지 못한 학교를 분교장 혹은 통합키로 한 까닭이다. 그런 탓에 옥룡중학교의 37년 역사가 담겨있는 김진윤 교장의 회고사는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앞으로 이 학교에서는 입학식도 졸업식도, 종업식도 없을 것 같다”고 무겁게 운을 뗐다. 김 교장은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 동문선배들과 지역민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농촌지역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교문을 닫게 됐다”며 “이렇게 마지막 졸업식을 갖게 돼 죄송하고 서글픈 마음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격한 감정을 참기 힘든 듯 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김 교장은 “37년 전인 72년 3월 개교한 이래 선배들은 제대로 된 학교를 만들기 위해 공부시간 줄여가며 흘린 땀으로 교정을 다졌고 우리 후배들은 선배들이 다진 이 땅에서 뒹굴며 아름다운 추억을 그려왔다”며 “진리탐구를 외치던 옥룡중의 전통은 빛나는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졸업생들에게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바로 모교”라며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말이 말해 주듯 옥룡중은 여러분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으로 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말한 뒤 “언제 어디서든 모교를 한층 빛내 달라”고 당부했다.
또 재학생들에게도 “여러분은 이제 다음 달 2일이면 다른 학교에서 공부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들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이 좋은 교정에서 졸업하지 못하고 읍내 학교로 통합된데 대해 미안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또 “앞으로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변화무쌍한 세상을 살게 되겠지만 새로운 학교에 가더라도 누구보다 예의 바르고 실력 있는 학생이 돼 달라”며 “중학교 졸업장은 비록 다른 학교에서 받더라도 언제나 옥룡중학교 학생임을 잊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아이들의 송·답사도 눈물겹기는 마찬가지. 졸업생과 재학생에 상관없이 아이들은 이제 모두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재학생을 대표해 송사를 한 김혜수 양은 “학생 수가 적은 만큼 우리는 더욱 하나가 돼 생활했다. 학교 통폐합이라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 앞에 허탈하고 아쉬운 마음 금할 수 없다”며 “언니 오빠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낸 지난 시간이 많이 그리울 것”이라고 말했다.
답사에 나선 마지막 졸업생 서진수 학생은 “너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게 너무 섭섭하다. 좋은 선배로서 더 많은 것을 채워주지 못하고 아쉬운 이별을 하게 돼 안타깝다”며 “새로운 학교에 가더라도 옥룡중학교에서 키운 강인하고 다부진 모습으로 씩씩하게 생활하기를 바란다”고 마지막 당부를 했다.
이날 졸업식은 학생들과 선후배 동문들이 모두 일어나 교가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마지막으로 부르고 들을 수 있는 사라질 옥룡중학교의 남겨진 교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