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나 못나나 모두 내 자식
잘나나 못나나 모두 내 자식
  • 박주식
  • 승인 2009.10.01 09:56
  • 호수 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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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민족의 명절 추석을 4일 앞둔 지난달 29일 열린 옥곡 5일장. 옥곡장은 추석제수용품과 차례음식을 준비에 나선 시민들의 발길로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시장은 풍요로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햇과일과 빨간 고추, 늙은 호박의 가을 색깔과 함께 재래시장의 정취가 흠씬 묻어난다. 평소 같으면 대형마트를 찾았을 시민들도 재래시장의 훈훈한 한가위 풍경을 잊지 않고 찾아 재래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물건 값 깎는 재미에도 흠뻑 빠져본다.
“수입이 아니고 내가 올봄에 직접 꺽은 고사리요. 많이 줄 테니 좀 사가시오.”

청과물과 어물전을 지나 장 뒤편으로 향하니 한 할머니가 발길을 붙잡는다. 햇밤에 호박, 무, 배추, 쪽파, 고사리, 도라지, 콩 등 갖가지 농산물을 한 움큼씩 앞에 두고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나눠 잡고 앉았다. 모두가 옥곡에서 진상에서 직접 생산해 들고 나온 농산물로 장을 펼치고 있다.

“많이 가져와야 많이 팔지, 가져온 것이나 빨리 팔고 갈거여”

여름내 농사짓느라 못나오다 이날 처음으로 장을 나왔다는 김춘자 (64세 진상 섬거마을) 할머니는 이미 아침 장에 부추를 다 팔고, 남은 고사리와 도라지 판매에 열중하고 있다. 힘에 부치지 않는 만큼만 택시를 이용해 가져온 상품이기에 풍족할 수가 없다. 그래서 벌이도 하루 2~3만원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농사철을 제외하곤 옥곡장으로 섬거장으로 가끔은 하동장까지 나서 판을 벌인다. 할머니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할머니 낼모레 추석인디 객지나간 자식들은 다 온다요?” 그걸 뭐 하러 물어보냐는 구박도 잠시 할머니는 자식들에 대한 자랑과 아쉬움을 줄줄이 이어간다.

할머니의 자녀는 3남1녀. 장남과 막내는 서울에서 둘째와 딸인 셋째는 순천에서 생활한다.

집짓는 일을 하는 큰 아들은 돈도 잘 벌고 다 좋지만 아직 결혼을 안 하고 있는 것이 불만이다. 다행히 짝을 찾아 3년을 동거하고 있으니 본인들이 원하면 빨리 식을 올려줄 생각이다. 오랜 군 생활을 마치고 냉동차를 몰고 다니며 채소 납품을 하는 막둥이는 돈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것이 걱정이다.

차 몰고 다니다 도둑놈 만날까 걱정에 그만두라고 해도 일을 잘한다고 사장이 놔주질 않는다. 이미 결혼도 한 막내는 며느리가 벌써 과일을 집으로 보내와 할머니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순천에 있는 둘째는 시장에서 장사해 번 돈으로 대학까지 보냈는데 요즘사업이 잘 안 돼 안타깝다. 할머니가 제일 아쉬운 건 셋째인 딸이다. 동네사람 모두가 예쁘고 야물다고 칭찬이 자자했는데 갓 스물 나이에 결혼을 해버려 밉다. 그것도 하나빠진 열 식구의 장남과 결혼해 시부모를 모시고 살기에 언제나 마음이 측은하다. 지가 좋아서 간 것이니 힘들어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말뿐이다.

이제 추석이면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다. 잘난 자식도 있고 아쉬운 자식도 있지만 모두가 내 자식이긴 마찬가지. 할머니는 벌써 참기름 두되를 짜놓고 밤이며 쌀이며, 김칫거리까지 준비하고 자식들을 기다린다.
함께 올 4명의 손자는 할머니의 모든 시름을 잊게 해 줄 보물단지 들이다. 한창 밤을 주워야할 때라 바쁘지만, 그래도 자식들이 오는데 음식 장만은 좀 해야겠다는 할머니의 한가위가 모처럼 고단함을 잊고 가족과 함께 웃음을 노래할 수 있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