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화’ 선과 오방색으로 그리는 깨달음
‘탱화’ 선과 오방색으로 그리는 깨달음
  • 최인철
  • 승인 2010.03.25 09:34
  • 호수 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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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구 탱화작가를 만나다

탱화는 부처의 가르침과 가르침에 등장하는 인물 등을 그리는 그림이다. 부처의 말씀과 깨달음을 그림으로 풀어 뜻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 것인 만큼 탱화 하나에 숨겨진 선조차 쉽게 내려놓을 만한 것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탱화를 걸고 붙이는 일은 부처의 일었으므로 탱화불사라 일컬으며 성스럽게 여겼다. 불사는 절을 새로 짓거나 단청을 입히는 거룩한 부처의 일을 행할 때 쓰는 말이니 탱화의 작업 또한 그와 같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탱화는 불교의 이념과 교리체계를 평면적인 회화로 묘사하는 그림이어서 예술의 본질이라는 아름다움이나 추상적인 표현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일반미술과는 달리 불교교리와 사상을 주제로 하는 성스러운 평면 조형예술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정신이 그대로 계승되고 보존될 때 불교문화가 맥을 이어가는 기본이 된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최고의 기술적 완성을 이루었다. 더나가 조선시대에는 대중적 기호에 맞는 민중미술로서 크게 성행했다. 우리나라에 언제 탱화가 들어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현존하는 탱화는 고려시대 이후의 작품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미 삼국시대부터 불화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즉 탱화는 통일신라 때부터 일반화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의 탱화는 귀족적인 성향, 조선시대의 탱화는 민중적인 성향을 보인다. 불화의 한 종류인 탱화는 의식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때문에 불화와 혼용해 사용하기도 하나 엄밀히 말하면 족자나 액자로 꾸며 거는 그림의 개념으로 사용된다.

전라도에서는 예로부터 의겸스님을 비롯 천여, 익겸 스님 등 뛰어난 화승(畵僧)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으로 수많은 탱화가 제작됐다. 현대에 와서는 입적한 만봉스님에 이어 탱화장 석정스님이 한국탱화의 전통미를 잇고 있다.

탱화의 사전적 의미는 거는 그림이다. 족자 또는 액자로 만들어 부처님상 뒤에 거는 후불탱화나 삼신각에 거는 시중탱화 등 여러 종류다. 검은 바탕에 이금으로 그린 먹탱화, 나반존자의 초상을 그린 독성탱화, 산신을 그린 산신탱화, 석가모니의 화상인 석가탱화, 저승에 있어서 죄의 경중을 가리는 시왕을 사왕탱화, 화엄신장을 그린 신중탱화, 조왕을 그린 조왕탱화, 칠원성군을 그린 칠성탱화, 불상 뒤에 모시는 후불탱화 등이 그것이다.

티베트에서는 탕카(tanka)라고 한다. 주로 면직물 위에 그렸다. 그림을 말아 올릴 수 있도록 밑단에 대나무 막대를 붙였다. 사원이나 가정집의 불단에 걸기도 하고, 종교 행렬에 들고 나가기도 하고 설법을 도해(圖解)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목적은 명상을 돕는 데에 있다. 종교 제전에 이용하기 위해 땅 위에 그린 만다라가 그 대표적인 예다.

탱화작가 강형구. 그는 광양에서는 유일한 탱화작가다. 전남에서도 탱화를 그리는 화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의 작업은 특별하다. 군대 제대 후 바로 이 일을 업 삼아 살았으니 올해로 꼭 17년째다. 그러나 보통 십대 중후반에 시작하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많이 늦은 셈이다.

광양읍 칠성리에 있는 그의 작은 작업실로 들어서자 각가지 안료가 방안 한 켠을 채우고 있다. 그는 현재 길이 3미터 폭 2.5미터에 이르는 신중탱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벌써 몇 달째 신중탱화에 빠져 살고 있는 그는 여전히 각각의 신장에 입체를 주고 생명을 불어넣기 여념이 없다.

얼핏 살펴보면 그도 신중탱화 속의 또 하나의 신장이 된 듯 고요한 움직임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정물스럽다. 마치 신중탱화의 으뜸을 차지하고 앉은 금강역사의 권속이 된 듯하다. 그가 그리는 필선은 유려하고 안정적이다. 구성과 비례가 적절함도 특징이다. 특히 채색에 있어 전통적인 양선색과 색채를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그는 전통기법을 살린 탱화에 몰두하는 셈이다.

“다 됐다 싶어 일을 놓으면 어느새 다 채우지 못한 것이 눈에 띠고 다시 작업에 매달리기를 몇 번씩 합니다. 정해진 가격 만큼에 따라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보면 다시 고치고 채워넣고....이 마저도 욕심이지 싶습니다. 부처님 세계를 그리면서 그 욕심하나 버리지 못하는 셈이지요” 전해져 오는 그의 웃음이 참 해맑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2007년 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에서 국선한 수월관음도다. 그의 수월관음도는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이 사는 정토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관음보살은 화불이 있는 보관을 썼으며 치마를 입고 있다. 보관에서부터 전신을 감싸는 베일을 걸치고 오른발을 왼 무릎 위에 올려놓은 반가좌 자세. 몸을 약간 틀어 오른쪽을 향한 채 바위 위에 앉아 있다.

관음보살의 등 뒤로는 한 쌍의 대나무가 표현돼 있고 앞쪽으로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다. 윤곽선과 세부 묘사는 붉은색을 주로 사용했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모습이다.
고려 불화의 전통적인 기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관음의 자비와 아름다움이 잔잔하게 담겨져 있는 그의 수월관음도는 그가 꿈꾸는 사방정토의 체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다. “탱화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말할 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거창하게 부처님의 깨달음을 들먹거리는 것은 낯부끄러운 이야기지요. 그저 탱화를 통해 먹고 사는 것이니 이 또한 부처님의 자비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별 다른 말할 게 없습니다” 탱화을 왜 그리느냐라는 우문에 그가 던진 솔직하다 못해 현명하기까지 한 대답이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어느새 신중탱화의 한 권속으로 돌아갔다. 탱화작업 중 가장 힘든 것은 얼굴 표정 특히 눈이다. 눈의 형형함을 통해 꾸짖음과 누우침을 요구하는 신위의 표정이 달라진다. 어서 깨달으라는 채근함도 담긴다. 그의 붓끝이 오래도록 금강역사의 눈에 머물러 움직일 줄 모른다. 멈춤 가운데 흐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