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 “누구보다 학생을 아끼셨던 선생님”
제자들 “누구보다 학생을 아끼셨던 선생님”
  • 지정운
  • 승인 2010.08.30 10:35
  • 호수 3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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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수 광양여고 교장 명예퇴임

누구보다 학생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그래서 어린 학생들에게 “선생님들보다 학생들을 더 사랑해 주시던 교장 선생님”이란 소리를 듣던 한문수 광양여고 교장이 40여년 정들었던 교문을 나선다. 그는 항상 학생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울러 더 많은 노력도 요구했다. 이 세상에는 공짜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채찍도 가혹했다. 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교장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는 매일 아침 교직원들보다 먼저 출근했고, 퇴근도 가장 늦게 했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이같은 일상의 반복은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고 고달팠지만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집념으로 이겨냈다.
광양여고를 명문고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한문수 광양여고 교장은 지난 27일 명예로운 퇴임식을 가졌다.

법대 지망생에서 선친 유지따라 교직 이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이 고향인 한 교장은 조선대학교 사범대학을 마치고 지난 1971년 3월 조선대 부속고등학교 교사로 교직에 첫발을 들였다. 원래 그는 법대 지망생이었다. 고교시절 사법시험을 꿈꿨지만 6.25를 겪은 선친의 뜻에 따라 인생 항로를 교직으로 선회했다. 더구나 그의 집은 종가집이었다. 이후 40여년의 교직생활에 대해 후회는 없었다. 당시 선친은 “어느 직장에 가든 꼭 너로 인해 좋게 됐다는 소릴 듣도록 하라”고 가르쳤고, 한 교장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광양과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교사 초임 발령 1년 후인 1972년 3월 광양진상실고(현 항만물류고)에 부임했다. 이때 가르쳤던 제자들이 현재 김재무 전남도의원, 박필순, 정순애 전 광양시의원, 황학범 광양시 기획예산담당관 등이다. 이후 다시 광양과 인연은 2007년 광양여고 교장으로 부임하면서이다. 홍매화가 교정에 아름답게 피어 있었지만 그는 “과연 내가 이 학교에 필요한 사람일까? 어떻게 하면 좋은 학교로 변화시켜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긴장이 되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학생과 교사는 서로 사랑하고 존경할 대상

한 교장은 학생들에게 항상 “너는 할 수 있다. 나는 너를 믿는다”는 말을 한다. 특히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아픔을 간직한 학생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한다. 이러다 보니 교장실의 문턱은 자연스럽게 낮아졌고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교장실로 찾아와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학생은 수업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사를 받아들인다는 지론을 펴는 한 교장은 학생과 교사의 관계에 대해 “교사는 학생의 아픔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며 “그래야 선생님을 받아들이고 존경하며 여기에서부터 교육은 시작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 교장은 또 “교육자는 교육의 처음과 끝”이라며 “교육의 승패가 교사에게 달린 만큼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선생님들이 되어 달라”고 주문했다.

기억에 남는 제자는 파코메리 박형미 회장

한 교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로 화진화장품 부회장을 역임한 파코메리 박형미 회장을 꼽았다. 한 교장이 기억하는 박 회장은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못갔지만 강인한 정신력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제자였다. 한 교장은 당시 그에게 “항상 용기를 잃지 말고 굳세게 살아 갈 것을 주문했다”고 기억한다.

한 교장은 “지금도 회사에 행사가 있으면 고등학교 때의 잊을 수 없는 은사라고 꼭 초대장을 보내온다”며 “언젠가는 초대받아 간 자리에서 엄앵란ㆍ신성일 부부와 나란히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준 제자”라고 웃으며 말했다.

학교의 일을 사회가 이해해 주지 못할 때 서운

한 교장은 정년이 내년이지만 올해 명예퇴직을 신청한 경우다. 이에 대해 한 교장은 “올해 너무나 힘든 일이 있어 퇴직을 결정했다”며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부에서 이해해 주지 못하고 왜곡할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교육과 체벌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분명히 반대 하지만 학생이 잘못하는 것을 묵과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교육을 포기한 것”이라며 “학교도 작은 사회인 만큼 이론과 현실의 괴리도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애정과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최근 교육계 일부의 문제로 전체가 매도되는 것과 관련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데도 사회에는 교장이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는 것처럼 비춰질 때도 괴로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교장은 광양여고에 부임한 이후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병을 얻었고, 최근엔 병원에서 수술까지 해야 했다. 그래서 은퇴 후엔 건강이 가장 우선이며, 함께하지 못했던 가족과 주변을 살피는 데 시간을 낼 생각이다.

한 교장은 특별히 명문학교로 가는길에 있는 광양여고 학부모들에게 감사의 말을 남겼다. 그는 “열정적으로 도와주셨기에 오늘이 가능했다”며 “앞으로도 학교를 믿고 도와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선생님들에게 “그동안 함께 하고 따라주셔 감사하다”며 “학생들을 친 가족이라 생각하고 긴 안목으로 세상의 변화를 꿰뚫어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를 펼쳐달라”고 주문했다.             

지정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