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열하일기-3
新열하일기-3
  • 광양뉴스
  • 승인 2010.09.20 09:42
  • 호수 38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두산 통일기원제를 다녀와서-광양시의회 운영위원장

통일기원제를 위해 우리는 중간에서 내렸다. 원래 목표는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기원제를 지낼 예정이었으나 중국 공안의 감시가 심해 불가능할 것이란 판단을 미리하고 백두산의 경계 밖에서 기원제를 지내기로 했다. 정성을 다한 제물을 준비하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광양시협의회 황득천 회장이 기원제의 제주가 되고 정현완수석부회장이 민족의 번영과 통일을 기원하는 축문을 읽어가며 통일기원제를 엄숙하게 진행하였다.

통일을 바라는 마음이 때와 장소를 달리할 문제는 아니지만 남쪽 사람들이 백두산에서 지내는 기원제는 새로운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통일기원제를 무사히 마치고 서파산문에 도착했다. 새로 갈아탄 버스에서 백두산에 대해 설명하는 방송이 한국어로 제공되었다. 주로 백두산의 화산활동과정과 백두산의 식생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처녀림이란 자랑이 주였다.

그리고 중국 정부에서도 백두산은 중국의 5대 명산에 등록하여 가장 중요한 자연문화재로 취급한다는 내용도 방송이 되었다. 방송했던 내용대로 창밖의 백두산의 식생은 온대식생이 주류인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희귀한 식생이 펼쳐졌다. 온대활엽수림부터 산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온대활엽수와 침엽수가 혼재된 식생에서 침엽수대, 그리고 고산대식생이 계속하여 나타났다. 특이한 것은 척박한 환경을 견디기 위해 활엽수인 사스래나무와 침엽수인 소나무가 서로를 기대면서 공생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자연에 순응한 식물이 자연에 의해 선택된 신비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천지주차장에 도착하였다. 풀이 심하게 흔들리는 걸로 보아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방은 이미 안개 속에 가두어졌고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은 안개를 정상 쪽으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더위에 지친 우리를 환영하는 것처럼 시원한 공기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이미 늦가을에 접어든 백두산의 날씨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백두산의 공기는 시원함이 아니라 차가움으로 우리를 덮쳤다. 8월의 추위를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준비해간 두꺼운 옷을 입고 1200여 계단을 밟으며 등산길에 나서는데 고산인지라 호흡이 가파오고 서서히 머리가 어지러워옴을 느낄 수 있었다. 배구하다 다리를 다친 이용재 도의원은 계단을 왕복하는 가마를 이용하였는데 쑥스러워하고 미안해하는 표정과 말에서 그의 겸손한 인간성을 느낄 수 있었다. 정상 가까이에서는 비까지 내렸다. 백두산의 천지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이다.

백두산과 천지는 한국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무엇이 있는 게 확실한가 보다. 힘들긴 하지만 일행 누구 하나도 예외 없이 힘든 표정을 감추고 감동의 순간을 느끼고자 육체의 피로를 이겨내고 있다. 천지에 도착하는 순간, 바람은 최고의 힘으로 산 아래에서 천지 방향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가히 몸을 가누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드디어 천지를 전망할 수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예상대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에 천지는 그 모습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의 정성이 부족했을까? 아니면 오를 때마다 천지를 보고 싶어 하는 나의 욕심이 과한 것일까? 신비를 간직한 천지를 직접 보지 못한 아쉬움이 적진 않았지만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춘 천지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눈을 돌려보니 중국과 북한의 국경이 발 앞이다. 올라가기 전에는 절대 국경을 넘어가면 안 된다며 어기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경고를 했었는데 비바람이 부는 정상의 상황은 이미 통제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발 한 짝을 살짝히 북한의 땅에 디뎌보았다.

상황적으로 보면 어느 누구도 그런 나의 행동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북한의 땅에 발을 디딘다는 것이 나름 흥분되고 약간의 떨림을 감수해야만 하는 우리의 상황이 오히려 언짢다.
금단의 땅이었던 그리고 말도 잘 통하지 않은 이역 중국의 땅에도 이미 발을 딛고 자유 왕래가 가능한 지금의 현실에서 같은 민족끼리 말 한마디 나눌 수 없는 우리는 지금 너무 부끄러운 모습이 아닌가. 우선 서로 왕래할 수 있는 정도라도 서로에게 허락할 수 있도록 상대에게 인내와 아량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모진 비바람 속에 더 이상의 시간을 보낼 수 없어 그만 하산하기로 하고 그 계단을 다시 내려왔다. 계단 공사를 위해 중국의 인부들이 가파른 계단을 돌을 메고 나르는 고단한 모습을 보며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내려오는 길에 금강대협곡을 보았다. 자연의 위대한 힘과 솜씨를 쳐다보며 감탄과 경외 말고는 그 어떤 표현도 불가능함을 느꼈다. 어느 글쟁이가 동해 일출의 장관을 보며 문자로 표현하는 한계에 울분을 토했던 글이 갑자기 생각났다. 나도 지금 그 작가가 느꼈던 한계에 동감한다. 언젠가는 좋은 문장력이 내게 생기길 기대하며 금강대협곡을 내려왔다. 이제 통화로 거쳐 고구려의 옛 수도 집안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