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통해 본 세상 (1)
책을 통해 본 세상 (1)
  • 광양뉴스
  • 승인 2011.02.28 10:20
  • 호수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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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흥남 한려대 교수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예년에 비해 눈도 많이 왔다.
세월의 흐름과 자연의 변화는 거스를수 없는 만큼 이곳 남녘의 산하에는 제법 봄 기운이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하지만 날씨만큼이나 우리네 마음마저 따스함이 스며있는 건 아니다.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마음을 을씨년스럽게 하는 일들이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기 때문이다. 구제역의 한파가 올 겨울 내내 기승을 부리며 전국을 강타해서 축산 농민들의 좌절감과 고통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태다.

애지중지 키우던 소와 돼지들을 생매장할 때의 농부의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형언할 수 있겠는가. 구제역의 한파는 서민들의 먹거리와 학교의 급식에도 적지 않은 지장을 줄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우리 광양의 대표적인 지역 축제로 부상하고 있는 “광양국제매화문화축제”가 전격 취소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새로운 연대의 벽두, 그리고 21년만의 폭설을 빙자해서 6명의 중년 남성들이 만난다.  젊은 시절 한 때 정치적인 관심사로 침 튀기고 핏대 올리며 열띤 토론으로 밤을 지새웠던 사이지만 이제는 그 어느 누구도 정치적인 관심사를 드러내지 않고 정치혐오증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로 바뀌어 있다.

정치적인 관심사로 한때 내남없이 침을 튀기고 핏대를 올리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정치 대신 증권과 부동산, 고스톱과 포커, 그리고 방중술(房中術)과 포르노에 관한 얘기로 시간의 공백을 메꿔나가는 것을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세상 전체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으며,

또 간혹 정치를 입에 담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야유와 조소와 욕설이 퍼부어져 말한 사람이 면괴스러워지기 쉽다. 술자리는 1차로 끝나지 않고 2차를 가기 위해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데 눈발이 그치지 않는다. 2차로 이동하는 중에 반은 특별한 이유도 대지 않고 쓸쓸히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가는 사람의 발길이 가볍지 않음을 아는 만큼 남아 있는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척한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흩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온다. 과거와 달리 연대의식의 소멸해가는 현실에 대해 씁쓸한 마음도 동시에 스멀거린다.

술자리에서도 이들은 의미심장한 대사들, 이를 테면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사람의 생은 언제나 고달픈 법이에요---”. “이제 내 가슴에 남겨진 건 극단적인 허무뿐이고, 그리고 그 허무 속에서 끝끝내 되찾고 싶은 건 인간적인 낭만뿐이야 ---” 등을 독백처럼 불쑥불쑥 내뱉으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눈 오는 늦은 밤이지만 헤어지기에는 묘한 아쉬움과 허전함이 밀려와 망설이는 와중에 단골집에서 만난 한 여성의 제의로 다음 행선지로 이동한다. 거기는 샤갈의 그림이 여러 곳에 액자로 걸려 있는 허름한 개인 화실이었다. 이곳으로 이동하는 중에 또 한 명이 떠나고 눈 오는 밤에 세 사람만이 남는다. 

박상우의 소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 나오는 주요 서사와 장면들이다. 필자는 올 겨울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읽으면서 작금의 우리 사회와 연동돼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이 작품은 1980년대를 보내면서 느끼는 답답함과 우울한 정서, 그리고 1990년 말 새로운 세기의 출발을 앞두고 설레이던 사회의 분위기와는 달리 소통의 부재와 우울한 정서가 여전히 지배적인 현실을 그려낸 수작(秀作)으로 되짚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에서의 붉은 태양과 흰 염소, 그리고 한 다발의 꽃과 두 여인, 올망졸망하게 눈 덮인 마을과 헐벗은 겨울나무의 풍경들을 오버랩 시키면서 작품의 의미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해 길게 논할 자리는 아니다. 다만, 문학 작품 속에서 그려진 세상과 사회가 그저 상상력으로만 그려진 허구가 아니라 작금의 세상과 사회의 정서를 상징적으로 잘 묘파해 놓고 있다는 점에서 한 작가의 예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샤갈의 그림에서도 시사하고 있듯이, 우리네 삶은 여전히 과거와 현재, 인간과 동물, 신앙과 세속, 고향과 타향, 그리고 추억과 현실로 그물코처럼 얽혀 돌아가는데, 이것의 단절과 소통의 부재는 우리 사회를 또 한번 우울한 정서와 자괴심으로 채워가지 않을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