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매화가 숨트는 섬진강가에서
하얀 매화가 숨트는 섬진강가에서
  • 광양뉴스
  • 승인 2011.02.28 10:29
  • 호수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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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권 국가건축정책기획단 부단장
이청준의 소설을 임권택이 영화화한 ‘천년학’에서 백사노인의 소실로 들어간 눈 먼 송화는 세상을 떠나려는 그의 곁에서 꿈타령을 부른다. 모두가 다 꿈이라고 노래한다. 카메라 앵글은 섬진강을 비추고, 송화의 소리에 맞춰 하얀 매화 꽃잎이 바람에 날려 나비처럼 명주처럼 하늘로 혹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들창에 부딪친다. 카메라의 명도(明度)가 높아지면서 화면은 꿈처럼 연출된다. 송화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백사는 눈을 감는다. 그는 그렇게 가는 길을 ‘소리길’이라 말한다.

이와 같은 문화와 풍경을 담은 섬진강의 봄은 독일 마인강의 가을을 연상시킨다. 마인강가에는 섬진강의 매화 같은 포도가 있다. 포도는 포도주를 담그는 것 못지않게 노란 잎들이 주는 경관가치도 크다. 찬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에도 색다른 포도주를 담그기 위해 서리를 맞히는 경우도 있다.

마인강 주변에서는 수천 종의 포도주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 마인강가를 따라가다 보면 로렐라이 언덕이 있다. 포도주, 포도나무 잎 그리고 로렐라이가 사뭇 추워지는 계절에도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섬진강가의 자연자원인 매화와 강을 중심으로 한 우리문화가 어우러지면 계절을 떠나 좋은 관광자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매화는 원래 열매를 상품화하기 위한 용도였을 것이나 꽃이 갖는 경관가치가 추가로 생긴 것이다. 지역으로서는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고 긍정적 이미지를 창출했고, 찾아오는 손님에게 음식이나 특산품을 팔아 소득을 올리는데도 기여했다. 광양시는 매화를 매개로 축제를 기획하게 되었고, 이제 서울 사람들에게까지도 매화축제가 봄소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그러나 축제라는 것이 지역마다 경쟁적으로 열리다보니 내용도 부실하고 차별성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비록 올해 매화축제는 취소됐으나, 매화축제의 생명주기가 끝나기 전에 전통을 유지하는 선에서 문제를 찾고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우선 인근 도시가 갖는 지역관광자원과 연계시켜 광역적인 지역발전자원으로 축제를 이용했으면 좋겠다. 때마침 정부가 남중권 동서통합 연계사업의 일환으로 섬진강변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지대조성을 위한 테마로드를 단계적으로 추진한다고 하니 의미 있는 일이다. 섬진강 100리 마라톤 코스도 개발되고, 지역테마인 매화, 벚꽃, 녹차, 토지, 재첩 등을 테마로 하는 길도 조성될 것이다.

하동과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힘을 합할 수도 있다. 기존의 공공시설인 하동역과 구례구역은 지역관광안내소로 복합용도화 하고 지리산, 쌍계사 그리고 인근에서 열리는 5일장을 묶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다. 축제기간에는 특별장터를 여는 것이다. 국악한마당도 열릴 것이다. 다듬이할머니연주단도 찾아올 것이다. 노인들의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매화단지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고칠 점도 많아 보인다. 사진 찍기에 적합한 구성을 더 많이 만들면 좋겠다. 그러니까 색깔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전체적인 조경감각을 가지고 나무배치도 바꾸면 좋겠다. 남도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동백림을 조성하는 것도 좋겠다. 가는 곳마다 바위에 새겨둔 글들은 산만해 보인다. 차라리 이 지역의 전통적인 농기구를 모아 전시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마을종합계획 같은 이름으로 전문가로 하여금 조경이나 색채를 다시 살펴보도록 했으면 좋겠다. 일부 숙박시설은 박물관, 문학관 혹은 유스호스텔 같은 형태로 고쳐 청소년들이 이용하기에 보다 쓰임새 있고 품위 있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다. 관광객들이 계절을 불문하고 찾아올 것이다. 그들은 몇 일간 머물면서 함께 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해가 거듭할수록 더욱 아름다운 지역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섬진강이 마인강에 뒤질 게 없다.

공무원은 공급자 시각에서 보는 경향이 있어 환경변화에 둔감하기 쉽다. 자리이동도 많다 보니 책임 있는 운영도 쉽지 않다. 세상은 쉼 없이 바뀌는데 공무원들의 생각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왕이면 섬진강가의 관광자원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지자체보다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참여하에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지주들이 나서서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말했으면 좋겠다. 사진가, 문학가, 영화인 등이 나서서 축제를 주도했으면 좋겠다. 수요자입장에서 더 새롭게 운영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지자체의 공무원은 주민들을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일했으면 좋겠다.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공무원들이 오히려 인접 지자체와 협력할 일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