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윤동주 백일장 사생대회
제4회 윤동주 백일장 사생대회
  • 광양뉴스
  • 승인 2011.06.20 09:37
  • 호수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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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내가 아끼는 것'

백일장 - 대상
내가 아끼는 것
정여진(광양여고 3-4)

어제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 친구들과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배가 빵빵해지도록 가득 채운 뒤, 우리는 각자의 몫을 계산했다. 내야할 돈은 만 오천 원. 지갑 속엔 천원 권 다섯 장이 있었지만 나는 천원 권을 내지 않고 만 원권 두 장을 냈다. 친구들은 공연히 잔돈을 만든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지갑 속에 있는 천 원짜리 지폐 다섯 장을 선뜻 쓸 수가 없었다.

웃기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아끼는 천 원짜리 지폐 다섯 장은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나에게 특별히 물려주신 유산이다. 할머니는 살아계셨을 때 숨을 쉴 때마다 코와 입에서 ‘가르릉’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앞을 보지 못하시는 할머니는 항상 나의 손을 잡고 천천히 얼굴을 더듬으셨다. 입으론 항상 나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그러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유산 오천 원을 남겨 놓으시고. 할머니의 삼일장이 다 끝난 뒤, 나는 슬픈 마음을 떠나보내고 할머니를 그리는 마음과 추억만을 남겨두려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유산 오천원을 받은 나는 슬픈 마음을 쉽게 가슴 밖으로 내보내질 못했다. 오히려 가슴에 뜨거운 돌을 올려놓은 것 같은 아픈 슬픔이 밀려들어왔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여진이 용돈 하라고 남겨놓으신 돈이다.”
아버지가 작은 정사각형 모양으로 접힌 천 원짜리 지폐 다섯 장을 건네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돈 오천 원을 침대 매트리스 밑에 넣어두시고는 간호사 언니에게 큰 손녀 물려줄 유산이다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께서 얼마인지도 모른 채 꼬깃꼬깃 접어서 침대 밑에 모아두셨을 소중한 돈.

나는 그 돈을 지갑의 한 쪽에 넣어두었고, 그 뒤로 낡은 천원 권 다섯 장은 내가 가장 아끼는 아니,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랑만큼 아껴주어야 할 소중한 보물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가끔 나에게 할머니께서 주신 돈 오천 원을 써버렸냐고 묻기도 하셨다.

내가 아직 쓰지 않고 남겨두었다 하면 아버지는 쓸 곳이 있으면 어서 써버리지 하신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나를 대견하게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을 잘 안다. 할머니는 나의 할머니이기 전에, 아버지의 어머니시기 때문이다.

내가 한참 사춘기의 망망대해를 방향 잃고 헤맸을 무렵, 목적을 상실한 나의 뱃머리를 바른 곳으로 돌려주신 분은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시다. 나는 할머니 덕분에 막막했던 대양 가운데에서 희망과 목표를 얻고 힘차게 노를 저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순탄하게 사춘기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할머니는 남김없이 모든 것으로 나를 아껴주셨다. 나 또한 할머니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무뚝뚝한 나는 그 사랑의 감정을 쉽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가슴이 한 군데도 아닌, 셀 수조차 없이 많은 곳이 뻥 뚫려버린 허전한 마음이 든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마음들. 나를 꼭 안아 주셨던 할머니를 나는 손 밖에 잡아드리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후회되는 나의 마음들을 나는 지금 할머니가 남겨주신 유산에 돌려주고 있다. 할머니가 나를 아껴주셨던 것처럼.

나도 지갑 한편에 고이 넣어둔 할머니의 소중한 유산 천 원짜리 지폐 다섯 장을 아껴주면서.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의 숨결이 나의 지갑 속에 다시 숨을 쉬며 남아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