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그 광활한 대지에 눕다
호주! 그 광활한 대지에 눕다
  • 광양뉴스
  • 승인 2012.02.1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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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봉애광양시 평생활동 프로그램 강사
며칠째 강추위가 계속이다. 우리나라 삼한사온의 기온을 무색케라도 하듯 외출을 나가기가 무섭다. 몇 해 전만 해도 이런 추위에는 꼼짝도 하지 않았던 내가 이번 추위에는 몸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아마도 나이 들어감의 증표들이 이렇게 나타 나는가보다.

추위 때문에 방에서만 보냈던 하루가 슬슬 멀미가 날 때쯤 절호의 찬스를 제공해 준 동생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무료 영화표가 있다고 관람하자는 것이다. 그다지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극장 안에서 느끼는 대형 스크린의 영상미가 그리워 질 때가 종종 있다.

터프한 동생은 핸들을 노련하게 조정하며 밤거리를 유유히 빠져나간다. 작년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나로서는 운전을 잘하는 동생의 손놀림이 부러워 넌지시 쳐다보는 순간 대형 극장이 눈앞이다.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를 관람하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 늘비하다. 뭔가 예감이 이상하다. 모두다 나처럼 무료 표를 들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답이 왔다. ‘분명 약을 팔기 위한 홍보전략 이거나 아니면 그와 유사한 것이 틀림없다.’ 혼자서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는 줄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건장한 신사들과 몇몇 여성들이 앞에서 서성거리고 한 남성이 마이크를 손에 쥐며 말을 한다.|

“영화를 상영하기에 앞서 저희 회사 홍보를 1시간 동안 먼저 하고 그 후 영화를 상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행여 여기에 불만이 계신 분들은 입장을 안 하셔도 됩니다.”라는 정중한 말이 이어졌다. 다들 분위기에 동요하지 않고 영화를 보겠다는 입장들인 것 같다.

발 디딜 틈 없는 극장 안은 대 만원이다. 꽉 차 있는 관객들을 상대로 홍보물이 스크린에 동영상으로 흘러나온다. 으아! 홍보도 홍보 나름이지 상을 당할 때 이어지는 절차들이 어두운 공간에서 끔찍하게 동영상으로 비춰지는 광경들을 보면서 몇 번이나 홍보 책자로 얼굴을 가렸다. 그래도 다를 무료 영화라는 중요한 목적 앞에서 이탈하는 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었다. 서두에 있었던 풍경과는 다른 오스트레일리아의 광활한 대지와 옥색바다 그 위에 펼쳐지는 수 만 마리의 소떼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호주 원주민인 눌라의 독백과 나레이션으로 시작된 이 영화는 1939년-1942년까지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오스트레일리아의 광활한 대지와 아름다운 비경에서 펼쳐진 로맨스 영화다. 영국에서 소식불통이 된 남편을 찾아서 새라 애쉴리는 호주로 떠난다. 귀족 출신답게 그녀의 기품 있는 옷매무시가 영국의 귀족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새라의 남편은 경쟁 농장인 커니농장에서 고용된 소몰이꾼인 악당 플레처에 의해 살해당하고 호주 원주민인 킹 조지에게 누명이 씌워진다. 그리고 플레처는 원주민 눌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눌라의 어머니는 새라의 남편이 운영하는 목장에 일꾼으로 일하다가 플레처에게 폭력과 강간을 당해 눌라를 출생했다.

또한 눌라의 할아버지 킹 조지는 수호신처럼 그가 가는 길에 신비로움을 전해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눌라의 어머니는 경찰의 방문에 놀라 눌라와 함께 물탱크 속으로 몸을 숨기는 과정에서 작은 사고로 익사하고 만다.

새라는 남편 장례를 치룬 후 플레쳐를 해고하고 자신을 농장까지 태워 주었던 자유로운 성격의 소몰이꾼 잭 클렌시를 고용하여 호주 군에 소를 군납하기 위해 벌어지는 먼 길을 달려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남녀 간의 애정과 모험을 그린다. 결국 성공적으로 소를 군에 납품하고 잭 클렌시와의 사랑이 이어진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1942년도로 흘러간다. 악당 플레쳐는 커니농장주를 죽이고 자신이 주인이 되고, 파러웨이 농장을 노리면 비협조적인 새라의 약점인 원주민 눌라를 잡아가게 하면서 갈등이 증폭된다. 잭 클렌시는 다른 소몰이 일을 따라 6개월간의 여정으로 집을 나서고 아들처럼 키우던 원주민 소년 눌라는 호주의 원주민 정책에 따라 잡혀가고 만다.

결국 다원시가 폭격을 당하고 잭 클렌시가 돌아와 눌라를 구하고 새라와의 갈등과 오해가 풀리면서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끝난다. 또한 원주민 소년 눌라는 성인식을 위해서 킹조지를 따라서 떠난다.

2시간 45분 동안 호주의 광활한 대지와 수 만 마리의 소떼들의 이동 그리고 여주인공 새라 애쉴리와 잭 클렌시의 로맨스를 보면서 나도 호주 원주민들의 수호신 킹 조지의 사랑의 마법에 걸려들고 말았다.

여주인공을 맡았던 니콜 키드만의 매혹적인 자태와 감미로운 연기력, 그리고 진정한 소몰이꾼 잭 휴먼의 남성미가 이들의 로맨스를 아름답게 조화 시키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억척스런 대 농장을 이끌어 가는 역할과는 판이하게 그녀의 의상과 연기력은 억척스런 연기보다 로맨스 쪽에 더 무게를 둔 것 같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유난히 맑아 보였던 어린 소년 눌라 야생에 길들여져 있는 이 아이와 그들의 수호신 킹조지의 신비로운 마법이 어쩜 호주 원주민 정책에 핍박을 받고 살아왔을  그들에게 화해의 손짓으로 다가가는 원주민 정책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이 한 편의 영화로 백인으로부터 받았던 원주민들의 핍박과 모욕적인 삶이 다 치유될 수 없겠지만, 다소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들었다.

영화를 관람하고 온 그날 밤 내내 나는 꿈속에서 호주! 그 광활한 대지위에 누워 수 만 마리의 소 떼들을 바라보며 킹조지의 마법에 걸려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