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기 ‘광양의 아픔’ 조명한다
격동기 ‘광양의 아픔’ 조명한다
  • 지정운
  • 승인 2012.07.30 10:20
  • 호수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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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호국항쟁 사적조사 용역’ 진행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등 격동기의 광양지역 현대사를 조명하는 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당시의 좌우 대립의 실상과 지역민들의 피해사실이 구체적으로 밝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광양시는 지난 26일 시청 상황실에서 ‘광양의 호국항쟁 사적조사 연구용역’ 중간보고회를 개최하고 그동안의 진행 상황을 밝혔다.

이 용역은 국가수호와 독립 운동 및 격동기의 현장에 대한 사료조사와 실태 파악을 통해 사적지 관리 및 활용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29일부터 올해 11월 28일까지 3500만 원을 투입해 1년 동안 진행된다.

순천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하는 이번 용역은 고려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시기를 대상으로 국가수호 사적지와 독립운동 수호지, 격동기의 현장을 살펴보게 되는데, 고려시대에서 구한말까지는 홍영기 순천대 교수가 맡게 되며, 여수 순천사건과 한국전쟁은 노영기·정호기·조철희 연구원이 맡아 진행한다.

연구팀은 조사대상의 문헌사료를 심층 분석하고 객관성 유지를 위해 1차 사료 조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동영상과 사진, 증언 등 관련 사적의 실태 파악을 위해 현지 실태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이번 연구용역은 해방에서부터 한국 전쟁시기까지의 광양 지역을 실증적으로 조사한다는 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을 받고 있다.

광양지역은 여순 사건의 주역들이 백운산과 지리산으로 숨어들면서 군경에 의한 반군 세력 토벌 작전의 근거지가 됐고, 이로 인해 지역의 인적 물적 피해가 크고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곳이다.

현재 지역에는 당시에 피해를 입었거나 집단 학살 등의 현장을 목격한 인물이 다수 생존해 있지만 그때의 상황을 알리는 것은 금기처럼 여겨져 왔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는 당시의 인물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사료를 조사하고 증언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돼 왔다.

이날 중간보고회에서는 이같은 지역의 정서를 반영하듯 격동기 현장을 다룰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과 더불어 이번 기회를 통해 민초들의 항쟁 역사를 제대로 조사하고 자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