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규 자유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박두규 자유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12.09.28 13:26
  • 호수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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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던 골골마다 희망이 들어선다(옥곡면 백양 오동 대리 백암 삼존 점터 신기 명주 마을)

옥곡 5일 시장. 내년에는 새로운 단장이 예정됐다.

억불지맥이 뻗어가는 안쪽으로 산세가 들쭉날쭉 웅크린 사이에 맑은 묵백천이 흐르는 곳. 옥곡의 중심을 이루는 크고 작은 마을들이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난 마을마다 이제는 집 짓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백양에서 구석기시대 주먹도끼가 조사된 것으로 본다면 1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이니 어느 때고 살만하지 않겠는가.

높거나 크고 작은 마을들

백양은 뒷산이 흰 염소가 누운 모습이어서 백양(白羊)이다가 동쪽 산이 백양나무 모양이라고 한자를 바꿨다. 오동은 오동나무가 있는 오동쟁이고, 마을 서북쪽의 선바구가 마을 지킨다. 대리는 큰몰이며 옥곡에서 제일 큰 마을로서 1914년 면 소재지였다.

백암은 잣밭골인데 백암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한 ‘산골 마을’이다. 피난지라는 백학동(白鶴洞)이 돌에 새겨졌었고 동학 농민군 훈련장이었다. 부두는 절터골에 부도가 있어서 부도암이고, 절에 큰 가마솥이 있어서 부두라고도 한다. 이곳과 사동 묵방 점기를 삼존동이라 했다.

삼존은 사동과 묵방이다. 사동은 사자목인데 앞산이 사자 모양이며 고양이바구가 있다. 행복마을 터를 다듬어 22가구 분양했다. 묵방은 먹뱅이로 산골이라는 뜻이다. 점터는 쇠점이나 옹기 굽는 가마 있었다는 얘기와 길가에 집들이 점점이 있어서 얻게 된 이름이다.

신기는 대곡, 세곡, 산요를 묶었다. 대곡은 큰골이라 골짜기가 길고 크며, 동북쪽에 장군바구라는 고인돌이 있다. 세곡은 ‘가는골’로 마을 터가 좁고 가늘며 5일 장이 있다. 산요는 산허리에 있는 마을인데 산이 잘린 삼거리에 정류장이 있고 문화마을이 들어왔다. 명주는 베틀 모양의 마을에서 명주 베를 짠다는 뜻이다.

연화도수(蓮花桃水)라는 오래된 우물이 있고, 국도2호가 개설된 이후 옥곡 행정의 중심으로서 공공기관이 자리한다.

꿈을 잊지 않고 이뤄가는 사람들

오동 김옥순(55) 씨는 보건진료소장으로 28년째 살면서 5개 마을 주민들의 건강한 생활을 이끌어간다. 아파도 욕심 없이 나누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건강 회복력도 좋다고 한다.

백암 장종민(60) 씨는 구전되던 백학동의 산 모양을 잘 안다. 6.25사변 중 형님이 의경으로 참전하여 전사했고, 학업을 이룰 수 없었던 형편을 극복하며 고향에서 삶을 꾸렸다.

사자목 배경순(67) 씨는 태풍으로 대봉실 감이 떨어진 것을 보니 매실밖에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며, 밤 값이 올해처럼 좋다면 나무의 비배관리를 더 잘할 것이라고 한다.

점터 양주원(57) 씨는 ‘백운배 연구회’ 회장인데 아직 돌배나무가 자라지 않아 규모화 되지 않았지만 판로와 가공의 길을 찾는 중이다.

점터 서성한(66) 씨는 농사를 1만 1천 평을 지으며 5일 일하고 2일은 취미인 마라톤을 한다. 100㎞ 이상을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에 출전하면서 사람의 무궁무진한 능력을 알았고, 82년 1억 원 주택복권에 당첨된 일은 47년 동안 복권을 산 것이어서 푼 돈 주고 몫 돈 찾은 셈이라고 한다.

큰몰 배도순(79) 씨는 광양중 1학년 가을운동회를 마친 날 여수14연대가 들어와서 학교도 못 갔는데, 서북청년단의 숙청을 피해서 입산한 형님은 종적이 없다. 04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한 결과 순천 관내에서 사살된 것으로 통지를 받았으나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