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규 자유기고가] 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박두규 자유기고가] 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12.11.12 09:38
  • 호수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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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면 외금 내금 이천 신시 섬거 용계 마을

큰 들과 큰 골의 역사는 이어진다

 

억불지맥의 동편과 호남정맥의 서편을 수어천이 갈라놓으며 기름진 들판을 껴안는다. 억불지맥이 동쪽으로 두드러진 아래 형성된 마을 중에서 섬거역은 고려와 조선 시대 광양의 2대 교통과 물산의 중심지였다. 해방 후 설립된 진상중고는 중등교육의 산실로 인재를 키웠고.


들판과 역사를 품은 마을

외금은 세 개의 산등성이가 연꽃 밥처럼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라고 금련촌이었는데 옥곡 금촌과 구분한 이름이고 외동이라고도 한다. 마을 앞에서 이천까지의 ‘큰들’을 이제 금이평이라 한다. 내금은 금련촌 안쪽이고 내동이라고도 부른다. 상금은 가장 위쪽에 위치하고 산의 가장자리여서 가장동이라고도 한다. 이천은 백천과 배들이를 합치면서 배천이 되어서 변한 이름이다. 백천사라는 절과 배가 드나드는 배들이, 5일장인 섬구장터가 있었다.

신시는 이천에 있던 섬구장터가 옮긴 ‘새장터’이며 면 소재지뿐만 아니라 4개 외면의 중심 역할을 했다. 섬거는 삼정봉 매봉 각삼봉이 둘러싼 형태가 두꺼비 같다는 이름이고 섬거역이 있었다. 숲넘(수동) 마을 위로 새떰이 형성되고 동학군의 마지막 전투 희생자 28명을 가매장한 가장골까지 합한 큰 마을이다. 용계는 수어천 가맛소에서 용이 나왔다는 전설과 뒷산이 닭이 알을 품은 모습이다. 수어댐 건설로 백학동이라 새겨진 공새바구가 수몰됐다.


전통을 되살려가는 일꾼들

외금 정병현(70) 씨는 ‘쌀 사랑 연구회장’으로 올해 ‘금이 유기농단지’ 23농가를 이끌어 퇴비만 쓰고 무농약으로 벼를 재배했고, 유기농 쌀이 학교 급식으로 사용되기를 바란다.

내금 시설원예단지 김병일(49) 씨는 최고의 원예농 꿈을 가지고 3중 하우스와 수막 보온, 온풍기 제작, 겨울 애호박 출하 등을 처음으로 한 신지식인이다. 하지만 농사는 잘 지어도 다른 조건 때문에 빚쟁이가 되었으므로 길을 바꿔 목사가 되었고 농사 선교의 꿈을 가지고 있다.

하의길(80) 씨는 열세 살 때 작대기로 맞은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장애3급으로 산다. 죽세공으로 못 만드는 것이 없었는데 광양제철이 들어오고 대 그릇이 쓰이질 않아 농사를 한다.

신시 이태상(72) 씨는 수어댐 주변 정비사업의 하나인 태양광 발전 운영위원장으로 09년 설립한 발전소의 지난해 수익이 2억 4천만 원이 나와 노인복지, 장학활동, 면민 행사비 지원을 했다. 진상초등학교에 수집해 놓은 향토민속자료 800여 점의 전시관을 꿈꾼다.

방숙희(74) 씨는 학생들과 노인들의 옷을 수선하는데, 양복점을 비롯하여 15업종이나 전전해오며 세상의 변화를 실감한다.

여수복(58) 씨는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고 독하다는 것을 실증한 삶이다. 갑자기 부군이 세상을 떠나자 세 아이의 엄마로서 부군이 하던 사진과 도장 파기를 배웠다.

섬거 선옥규(63) 씨는 역촌과 동학의 역사가 깃든 마을이 자랑스럽고, 임진왜란 때 섬거 두꺼비가 다압 섬진까지 가서 왜구를 물리치는데 합세했고 두꺼비 모양 때문에 양봉이 안 되는 마을이라고 한다.

정용성(59) 씨는 11년 40년 동안 나무를 가꾸어온 노력의 산물로 ‘목본성 식물 묘목 생산 방법’으로 특허를 받았다. 옥룡 대방 뒷산에 금강송, 동백, 느티나무 등 16만 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김복규(62) 씨는79년 다섯 마지기 논에 단감을 심어서 ‘미친 놈’이란 소리를 들었으나 지금은 ‘단감의 선구자로 감을 예술로 가꾼다’는 호평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