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균영을 생각하며<2>
소설가 이균영을 생각하며<2>
  • 광양뉴스
  • 승인 2014.11.10 11:38
  • 호수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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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광(하조나라 대표)
김세광(하조나라 대표)
아직도 옛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있을 듯한 툇마루에 함께 앉아 고운 자태의 어머니와 이인영씨와 함께 옛날 일을 이야기했다. 대학교 2학년 때쯤이었을까? 균영 형이 나이 어린 나를 찾아 비에 흠뻑 젖은 채 몸을 떨면서 강원도 삼척의 시골집을 찾아왔던 일, 동해바다에서 둘이서 작은 거룻배를 타고 희망을 이야기하며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며 노래를 불렀던 일.

서울 연희동에 있는 그의 자취집에서 가난한 세 형제 자매가 생활하고 있을 때 삶이 힘겨워 울고 싶다며 술에 취해 밤새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 힘든 가시밭길을 헤쳐 나와 빛나는 박사학위를 받으며 장한 아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감격해하시던 어머니의 모습, 그때 어머님을 뵈었던 일들이 새삼스럽게 엊그제 일어났던 일처럼 선명하게 살아났다.

그뿐만 아니었다.

어느 날 내 눈앞에 곱게 접은 A4 용지를 자랑스럽게 펼쳐 보이며 드디어 소설 하나 완성했다며 믿을 수 없을 만큼 빼곡히 쓴 글자를 보여주었다. 꼬불꼬불 비스듬히 누워있는 아라비아 글씨처럼 외길을 따라 나란히 여행하는 새끼 개미들처럼 아주 작고 정갈한 그의 깨알글씨에 탄복했었다.

어떻게 수정 한 번 거친 흔적 없는 볼펜 하나로 깨알 같은 글을 단숨에 써내려갔을까? 그 때도 뭔가를 쓰고 싶어 했던 내겐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쓸 때까지 그의 머릿속에는 얼마나 많은 갈등이 존재했을까?

이균영은 정말 천재가 아닐까? 그때의 놀라움과 신비로웠던 균영 형에 관한 느낌들이 다시금 살아났다.“하늘이 시샘한 천재작가며 촉망받는 역사학자”

“요절한 젊은 소설가, 한국문학계의 큰 손실”그가 유명을 달리했던 다음날 조간마다 아까운 인재라며 그를 기리는 특집기사가 쏟아졌던 그날도 기억이 났다.

“채봉이 형님은 거의 매일 우리 집에 왔어요. 사랑채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어릴 적부터 유달리 친했던 이균영과 정채봉은 약속이나 한 듯 창창한 날에 이 세상을 떠나갔다. 우산리 집을 수시로 드나들며 다정한 형과 아우가 되어 큰 꿈을 키워가던 그들을 줄곧 보아왔던 동생 이인영은 이제는 둘 다 떠나버려 몹시 안타깝다고 했다.

한국문단의 큰 기둥으로 우뚝 서 있어서 큰 자랑이며 기쁨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소식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생각해보면 그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이 나라와 작은 읍내의 광양이라는 고향땅에 그는 결코 작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과 생전의 이력을 찬찬히 살펴보면 평범한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큰일들을 이루어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대를 뜨거운 눈물과 피땀으로 파헤쳐가며 소설가로 역사가로 분주하게 살다간 그이기도하다. 그것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광양의 귀중한 역사이기도하다.

이균영 선생의 어머니 김계순 여사.
이제 그가 간지 벌써 20 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설가 이균영이 광양이 낳은 큰 별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점차 흐릿해져가고 있음이 부끄럽고 가슴 아프다. 좀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이제라도 그가 남긴 수준 높은 문학적 역량과 역사학적인 가치를 후손에게 기릴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 아닐까? 그는 적어도 정채봉, 김승옥과 더불어 광양이 낳은 빛과 소금과 같은 큰 존재라 생각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어느 유명 예술가가 잠시 머물러있다간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지역에 기념관을 만들고 작품 속의 한 장면만으로도 문학공원을 만든다고 한다.

그가 유난히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던 광양을 우리가 작품 속에서 만나듯 후손들도 그의 기념관에서, 광양의 문학관에서 그를, 빛나는 광양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천재 소설가 이균영의 부끄럽지 않은 아우로 자랑스러운 광양인으로 길이 남고 싶다. 나는 지금도 그가 몹시 궁금하다. 과연 그는 살아서 줄곧 가고 싶어했던 그 먼 노자와 장자의 나라에 가서 편히 쉬고 있을까? 아니면 운장산(백운산) 위에서 반짝이는 별이 되어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