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경의 논술교실<43> 편지
박옥경의 논술교실<43> 편지
  • 광양뉴스
  • 승인 2015.10.23 19:52
  • 호수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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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박옥경 (광양중진/벌교초등학교 방과후논술교사)
박옥경 (광양중진초등학교 방과후논술교사)

2학기에 벌교 초등학교 학생들을 만났어요. 순박하면서도 자신들만의 개성적인 생각을 맘껏 글로 풀어내는 모습이 흐뭇하네요.

가을 학기에는 학예회, 운동회, 공개 수업 등 학교에서 행사가 많지요. 유채은 학생도 공개 수업을 하면서 긴장한 탓에 갈증이 많이 났다고 해요. 공개 수업이 끝난 후에 수고했다고 선생님께서 주신 오렌지 주스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감동적이기까지 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갈증을 풀어 준 오렌지 주스에게 고마운 마음을 편지로 썼어요. 그런데 너무 맛있는 오렌지 주스 생각만 하다가 정작 할 말을 놓쳐서 ‘추신’이라고 써서 할 말을 덧붙였어요.

추신은 편지에서 빠진 부분을 맨 마지막에 덧붙이는 글이에요. 오렌지 주스를 아이와 할아버지로 비유한 것이 참 재미있네요.

우리가 흔히 쓰는‘원 샷’은‘한 입털이’라는 순화어로 사용하기를 권장해요. 유채은 학생처럼 무생물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의인화해서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은 글짓기 공부가 되지요.

<편지>             

맛있는 오렌지 주스에게                      

유채은양

                                        벌교초등학교 3-3 유채은

오렌지 주스야, 안녕?
난 너를 너무 좋아하는 채은이야.
갈증이 날 때 물을 많이 마시지만 오늘은 너를 원 샷 했더니 갈증이 싹~사라지더라. 그게 고마워서 편지를 쓰게 됐어.

 너는 항상 병 안에 담겨 있으면서 그 안에서 맛있게 발효되고 있는 것같이 보여. 네가 냉장고 속에 며칠 동안 있으면 더 달아져서 좋아.

달고 맛있는 오렌지 주스, 차갑고 신 오렌지 주스. 내가 그냥 생각해본 건데 달고 맛있는 오렌지 주스는 젊은 오렌지 주스 같아. 만들어진 지 오래 안 된 오렌지 주스 말야. 사람도 이제 막 태어난 아기나 우리 같은 아이들 울음소리는 활발하고 힘이 있잖아.

반대로 차갑고 신 오렌지 주스는 늙은 오렌지 주스 같아. 만들어진 지 오래된 주스. 할아버지 손은 차갑기만 하거든.

할아버지랑 닮았어. 그래도 난 차별하지 않을 거야. 차별하지 않고 다 마셔줄게 걱정 마. 병 속에서 맛있는 나를 언제 찾아줄까 하고 기다리지 않아도 나는 너를 항상 찾을 거야.

 긴장했을 때, 더워서 목마를 때, 시원하고 맛있는 게 먹고 싶을 때 너는 항상 내 곁에 있었어. 달콤하고 신 맛이 내 입 안으로 들어 올 때 얼마나 시원하고 감동적인지 몰라. 포도 주스, 사과 주스, 딸기 주스, 자몽 주스 등에게도 말해 줘. 내가 자주 찾고 마셔주겠다고. 알았지?
 그럼 안녕~~
2015.10.2
                        채은이가

추신: 오늘은 공개 수업 때문에 긴장을 해서 갈증이 더 났어. 공개 수업 후에 마신 너는 환상의 맛이었어. 감동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