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 문화탐방/ 수월정(水月亭)의 전설<1>
/우리지역 문화탐방/ 수월정(水月亭)의 전설<1>
  • 광양뉴스
  • 승인 2016.01.29 22:06
  • 호수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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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래 시인ㆍ수필가

건립과 배경 

  수월정은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1420-2번지며 이곳에는 섬진진도 함께 있다. 수월정은 임진왜란 전인 1573년에 건립한 정자이며 유허비 내용이 음각돼 있다. 정자(亭子)를 건립한 사람은 광주 정씨로 나주 목사를 역임한 정설(鄭渫,접)이며, 유허비문(遺墟碑文)을 쓴 사람은 송강(松江) 정철이다.

  그리고 시를 지은 사람은 영광군 불갑면 출신 강항(姜沆)선생이라 전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22일 강항선생 종친회는 광양시청 회의실에서 강항선생과 광양 수월정에 관한 포럼을 개최했다. 수월정기와 시(詩)의 저자를 규명하고자 함이었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과 지리적 여건 그리고 자연적 환경을 먼저 고찰해야 하며 이곳에 수월정을 설립한 동기와 연혁을 살펴보고 정설(鄭渫·접)ㆍ정철(鄭澈)ㆍ강항(姜沆)선생 등 3인의 선비들이 이곳과 어떤 인연을 가졌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이 마을 연혁을 보면 섬진진(蟾津鎭)이 국가 중요문헌에 나타난 것은 고려지리지에『섬진(蟾津)』이란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918~1392)에 이 마을은 지금의 나루터 부근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을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1705년에 당시 조정에서 군사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수군시설인 섬진진(蟾津鎭)을 설치하여 별장(別將 : 종 8품)을 두었는데 별장은 경영(京營:서울)과 통영(統營:慶南)에서 교대근무(30朔 : 450일)를 하다가 얼마 뒤에는 별장의 직급을 당시 광양현감과 동일 직급(종 6품)으로 임명하여 수군지로 삼았다.

  한편 섬진마을의 역사를 행정 변천사로 살펴보면 1600년경에는 광양현 동면(東面)다압리(多鴨里)지역으로 기록돼 있으며 1700년 이후에는 다압면에 속하였다. 그러나 1789년 호구총수에는 이 지역을 내군도리(內郡道里)라 하였으며 1872년에 왕명(王命)으로 제작된 광양현 지도에는 섬진진(蟾津鎭)이란 수군병영이 있었고 이 지역주변에는 진촌(鎭村 : 當時 88호)이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1895년 수군진영인 섬진진(蟾津鎭)이 없어지면서 섬진진 관할(慶南 統營管轄)이었던 경남 하동군 두치진(頭恥津)지역이 광양군에 속하게 되어 행정구역상 다압면 섬진지라는 마을로 되었으나 1912년(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행전 구역개편 이전에는 섬진지역은 다압면 섬진리(蟾津里)와 군도리(郡道里)로 이루어져있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전국적으로 행정구역개편이 이루어짐에 따라 당시 다압면 섬진리 일부지역과 군도리(郡道里)·다사리(多士里)가 병합되어 도사리가 되었는데, 1915년 1얼 1일을 기하여 광양군 섬진강 동쪽의 다압면 섬진리 일부지역인 두치진(頭恥鎭)을 경상남도 하동군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1987년 1월 1일 기준(광양군행정구역일람)에 의하면 다압면 도사리(法定里)에 속하여 행정리상 도사 1구가 되어 섬진(蟾津)이라 하였고 현재는 다압면 도사리에 속하여 행정리상 섬진이라 한다.

  도사리(道士里)의 이름의 유래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당시 군도리·다사리·섬진리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군도와 다사의 이름을 따서 도사리(道士里)라 하게 되었다.

  섬진은 광양현지도(1872년)에 의하면 섬진나루터 부근 (배 맨 바위 쪽)에 커다란 바위들이 어우러져 있는 곳에 섬암(蟾巖)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표기되어 있는데, 마치 두꺼비가 헤엄치는 모습을 하고 있어 역사적 사실기록을 근거로 할 때 이 거북바위 모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섬진마을이 행정구역상 독립되기 전에는 이 지역을 내군도리라 하였고, 현재 사동(蛇洞)·지막동(芝幕洞)지역을 군도리라 하였는데, 모두 수군(水軍) 주둔지와 관련된 지역으로 생각되며 사동은 마을 형국이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지막동은 현재 매화마을 지역인데 역시 수군진영과 관련된 지명으로 생각된다. 수월정의 내력이 끝나면 정철·정설·강항 선생 순으로 그분들의 생을 논하고자 한다.

  또한 40년 이상을 광양에서 거주한 정설을 광양 인으로 볼 것인지도 규명해 보고자 한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