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미학
나눔의 미학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4.03 08:52
  • 호수 2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공놀이를 즐길 수 있는 작은 구장을 만들기로 했다.
마을이 훤히 보이는 계곡 옆 논을 이용하기로했다. 논에 무성하게 자랐던 마른 풀을 태우고 며칠 뒤에는 땅 속에 숨겨진 뿌리마저 뽑아버렸다.
다시 그 위에 흙을 붓고 깊게 박혀있는 돌을 고르느라 며칠을 허리 숙여 노동을 했더니 온 몸이 천근만근이다.

잠자리에 들면 팔다리가 욱씬거려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일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내 몸엔 노동이 익숙해지지못했나보다. 갈수록 절감하는 노동의 힘겨움이다.
그러나 아침이면 그 고통은 사라지고 내게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땅을 고르는 작업을 한다. 참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을 여러번 해본 바 있다. 아마도 농부들의 일상도 그러할 것이다.
매일매일 힘들어하면서도 마치 마법에 걸린 사람들처럼 아침이면 고통을 잊고 마치 새  희망을 캐듯 일찍 들판으로나가는 농부들…자연 속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돌을 고르고 땅 속에 깊이 뿌리를 내민 잡초를 캐면서 내가 비로소 이땅의 주인이고 내 땅을 내 힘으로 일군다는 자체가 특별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산 가운데 걸려있는 구름들을 바라보면 나무 사이로 스며들고 싶어하는 구름들의 마음과  재촉하며 또 다른 곳으로 구름을 끌고 가고 싶어하는 바람의 갈등을 생각한다. 한동안 편안하고 맑은 기분에 잠겨본다. 주변 산허리와 들판에는 모자를 쓰고 한가롭게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기 좋은 그림이다.

아직도 도회지에 두고 온 친구나 이웃들이 보고 싶어서 전화가 오거나 문자메일이 오면 보고싶다는 말을 연신 내뱉는 처와 아이들을 보면 가끔은 미안하기도하고 그들 뜻대로 그곳에 한 번 다녀와야하는 것일까 ? 하는 생각도해본다. 그러나 도회지에 비하면 보이는 모든 것이 밝고 솔직하다. 그것이 농촌의 매력이며 사람다운 인생을 사는데에 하나 꺼리낌없어 마음 편하다.
비록 힘이 들기도하지만 그에 따라 오는 노동의 기쁨을 생각한다. 내가 땀을 흘린 만큼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누릴 수만 있다면...건너편 길로 경운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한동안 집안에서 조용히 지내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과 몸이 급해진다. 그들은 저많은 일을 하기위해 한겨울을 어떻게 참고 견디어냈을까 ? 하는 생각을 해본다. 봄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며 용기도 주는가보다. 농부들의 집안은 텅텅 비어있고 놀이처럼 그들은 산으로 들로 나가있다. 우리집 주변으로 경쟁하듯 한꺼번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우리 사는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향기롭다.
매화, 동백, 목련, 홍벚꽃, 살구꽃, 개나리, 진달래, 등등… 마을 전체가 꽃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봄이면 저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웃으며 노래하고있는데 저광경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봄을 훌쩍 떠나보내버리면 너무나 억울한 일이 아닌가 ?

산과 들판에 나가보라. 대지에 나온 꽃과 새싹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여린 새싹이 하루가 몰라보게 점차 커가는 것을 바라보는 즐거움 또한 산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오후 시간이 되니 옆집 성훈이 아빠가 기원농장에서 단풍나무를 가져다 심으라고 했다며 좋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부랴부랴 달려가니 단풍나무를  많이 키운 밭이었는데 전부 파내고 복분자를 심을 예정이라한다. 제법 큰 단풍나무는 시중 화원에서 사면 꽤 많은 돈을 주어야 살 수 있을 법한데 농장주인께서 그냥 가져가 심으라한다.
게다가 포크레인으로 파낸 나무의 뿌리와 가지까지 잘라내는 방법을 내게 가르쳐주며 나무를 일일이 손질해준다. 더욱 황송하고 고마운 일은 구장이 들어설 논에까지 직접 차로 운반까지 해주었다. 너무나 미안하고 고마워서 사례를 하니 극구 만류한다. 너무 완강하게 거절해서 그 분의 마음을 돈으로 계산하는 것 같아 계속 고집할 수 도 없는 것 같아 난감했다. 여러해동안 가꾸고 정성을 들인 공력을 생각하면 황송하기 그지없다.

짧은 거리였지만 나무를 실은 트럭을 타고 논까지 오면서 농촌에와서 고생이 많지요 ? 하면서 안부를 물어보기도한다. 도회지 생활하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마음들이 시골에는 따뜻하게 남아있었다. 많은 나무를 옮기느라 좀 힘이 들었지만 고마운 이웃 덕분에 내내 기분이 흐뭇한 하루였다. 나눔의 미학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개인의 사욕을 위해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삶이 내 주변에 든든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몹시 기쁘고 흐뭇했다. 내일이면 구장 모서리에 그 단풍나무를 심고 그들이 자라 잎을 피우고 그늘을 만들어주는 멋진 모습을 기대해본다. 곧 빨간 단풍나무잎이 활짝 핀  모습과 그 그늘 아래에서 즐거운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나무를 볼 때마다 우리에게 준 사장님에게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농촌 사는 즐거움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