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항해사의 일기
어느 항해사의 일기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4.09 22:37
  • 호수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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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의 항해기록을 적은 일지를 Log Book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옛날에는 항해기록을 통나무(Log)에 새겨서 남겼기 때문이다.

필자는 과거 항해사로 근무하면서 오대양육대주를 누빌 당시 매일 일기를 썼는데 그 제목을 Life Log Book(인생항해일지)라고 명명하고,바다를 항해하거나 외국항에 기항하였을 때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해 두었다.
최근 자료를 정리하면서 인생항해일지에 적힌 글 중 2편의 시를 통해 바다사나이들의 얘기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1981년 1월 2일 부산항을 출항하면서방파제 끝 깜박이는 등대와// 멀어진 야경을 짓이겨진 유화로 그려놓고,//부우우웅~// 떠나보내는 구리빛 음색// 만남의 여운도 사라지지 않은 지금// 난 어느 새 수평선에 있고// 또 다가선 만큼이나 그 밖에 있다.//다른 바다로 가는 길목,낯익은 형제도를 돌아설 때//표정없는 내 삶의 테두리를 보았다.//한번 본 인연으로 나의 인생이 되고,//만나는 바다마다 좁혀지지 않는 간격이// 감청색 바다 속 깊게 깊게 침전될// 방황의 끝임을 먼 훗날에야 알았다//해와 달과 별들이 사는 곳//바람과 구름과 파도 가 사는 곳//허공을 헤매는 상념의 파편들인가!//저 수평선 넘어 후두둑 후두둑// 소나기 내리는 소리//

이는 오랜 항해를 끝내고 항구에 들러서 반가운 친구들과의 한 잔의 술 그리고 기다림에 지친 연인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바다사나이들의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정해진 출항시간은 다가오고 우린 뱃고동을 울리면서 항구를 떠날 수 밖에 없다.저녁노을이 지고 어둠이 깃든 휘황찬란한 부산항의 야경을 뒤로하면서 오륙도를 지나 먼 항해를 시작하는 항해사들의 심정을 적은 글로 생각된다.바다의 사나이들은 항구에 들려서 그 나라의 풍물을 접하고, 그런 경험을 자기나라에 가서 전하는 순수한 민간외교관들이다.
광양항에는 연간 입항하는 외항선 선박의 수가 2006년 기준 약 2만척으로 약 30만명의 관광객이 광양항을 방문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시민들은 이런 바다의 사나이들에게 친절하고 좋은 인상을 남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또한 광양항 운영의 큰 축을 이루고 있으며,대외적으로 광양항의홍보대사가 될 수 있는 순수하고 정열적인 바다사나이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는 광양항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2
1981년 9월 14일 남태평양을 항해하면서봄비가 내린 이 바다를/내일은 바람을 품팔아/ 한번 갈아 뒤엎어야겠다//묵은 물은 햇볕을 쬐게 하고/빛깔나는 물은 뿌리와 닿게 하여/숨겨둔 씨앗을 뿌려야겠다//남국의 풍족한 우기와/ 소금에 절인 묵은 햇살로/ 출렁이는 황금들판으로 만들어야겠다//난 갈매기떼를 쫓아내는/훠워이~ 훠워이~/ 허수아비나 되어야겠다.//

이 글은 필자가 뉴질랜드에서 대만의 화련항으로 수송되는 종이원료인 우드칩(wood chip)을 수송하는 전용선을 승선할 당시 남태평양을 항해하면서 바라보는 대양의 풍경은 적은 글인 듯하다.
원시림이 그대로인 외딴 섬을 지나치기도 하고, 수많은 돌고래떼와 함께 바다를 항해하기도 하며,외롭게 대양을 배회하는 신천옹(Albatross)라는 큰 새와 항해하기도 하며,노을진 잔잔한 바다에 작은 풍랑이 일어 황금빛을 뿜어내는 바다의 다양한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필자의 딸이 이혜린인데 이는 남태평양 파푸아 뉴기니아 부근에 있는 섬의(리히르:Lihir) 이름을 딴 것이다. 이 섬을 바라보면 매우 아름다워 만약 내가 딸을 갖게 된다면 저 섬처럼 아름다운 딸을 얻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고 결혼하여 득녀를 하게 되자? 지은 이름이 그렇게 된 것이다바다의 사나이들은 뭍에서 가져온 번뇌와 방황을 이런 아름다운 자연에서 깨끗이 씻어내는 수도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