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여름나기
어린 시절의 여름나기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7.03 09:09
  • 호수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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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무덥습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름만 되면 어린 시절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토요일에 회사일을 마치고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손에는 어김없이 수박이 한통 들려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이것을 얼른 받아 들고 집앞 마당에 있는 우물속 두레박에 넣어 둡니다. 수박을 넘겨준 아버지는 나에게 등목을 요청하십니다. 나는 펌프질을 해서 물을 길어 올려 바다처럼 넓은 아버지 등에 붓습니다. 얼음처럼 시원한 물로 등목을 하신 아버지는 날아갈 듯 상쾌해 하셨습니다.
 
그런 후, 이제 온 가족이 모여 점심식사를 합니다. 사기그릇에 담긴 보리밥에 찰랑찰랑 시원한 우물물을 붓고 숟갈로 몇 차례 저은 다음 식탐대로 수저를 움직입니다. 식탐이라 했지만 밥상 위에 펼쳐진 풍경은 소박하기 그지없습니다.

텃밭에서 금방 따온 싱싱한 상추와 풋고추를, 묵은 된장과 고추장에 한 번씩 듬뿍 찍어 한 입 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식구 중에 누군가가 텃밭의 고추 맛이 매워 콧등에 땀방울이라도 흘릴라 치면, 할머니가 “거참 복있게 먹는다”며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밥을 만 물을 끝까지 들이키는 것도 ‘복 받는’ 일이라 하시고, 손주들 중에 밥알을 남기는 자가 있으면 어김없이 ‘농부의 땀방울론’이 흘러나왔습니다.
식사를 마치면 대청이나 툇마루의 그늘에 누워 낮잠을 청합니다. 마당 앞 오동나무나 감나무 잎새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를 친구삼아 한 잠을 자노라면 어느새 불볕더위는 저만큼 물러나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형을 따라 집앞 냇가에 나가 송사리를 잡아 고무신에 담아 왔습니다. 왕잠자리를 찾아 뒷산 너머까지 좇다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나왔습니다. 그래도 밀잠자리를 실에 꿰어 날리면 왕잠자리가 날라 와 붙는 재미에 끌려 무릎의 통증은 잊어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뒷동산에 올라 풍뎅이며 매미를 잡으려고 나무에 오르다 보면 어느새 여름방학은 끝나 있었습니다.

이것이 불과 한 세대 전의 여름나기 풍경입니다. 우리는 오천 년을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살림의 문화’를 간직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그 소박했던 삶을 잃어 버렸습니다. 소위 ‘개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지혜로운 삶을 놓쳐 버렸습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대대로 누려야 할 금수강산을 한 세대 만에 쓰레기 강산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자연위에 군림하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파괴의 문화’속에 깊이 물들어 살고 있습니다. 수목을 잘라낸 자리에 콘크리트 아파트로 된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우물 속에 넣어야 할 수박을 냉장고에 넣어 억지로 차게 만듭니다. 대청마루에서 죽부인을 끼고 더위를 피하던 우리가 에어컨을 돌립니다. 냉장고와 에어컨의 전력을 얻기 위해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는 부지런히 돌아가고 자연의 파괴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자연은 이 ‘파괴의 문화’의 대가를 서서히 인간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지진과 기근, 폭우와 태풍 등에서 분노하는 지구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시급히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더 이상 자연위에 군림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문화를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올해는 좀 더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여름을 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