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51대가 만들어낸 ‘열정’
버스 51대가 만들어낸 ‘열정’
  • 백건
  • 승인 2006.12.08 09:45
  • 호수 1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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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삼성 FA 결승전 참관기
 

 

맹추위 불구, 2천여 원정 응원단 상경
우승 확정, “얼싸안고 서로 기뻐해”


지난 3일 오전 7시. 이날은 올 겨울 들어 전국적으로 가장 추운 날이었다. 뉴스를 통해 듣던 서울의 기온은 영하 8도. 체감온도까지 감안하면 영하 10도를 훨씬 밑도는 맹추위가 원정 응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양 축구전용구장에는 이미 수 십대의 버스가 원정 응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응원단 모두 맹추위에 대비해 중무장한 모습이다.

버스 51대의 원정응원단은 한국 스포츠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이다. 선두 차량은 전남 드래곤즈 서포터즈인 워너 드래곤즈. 이들은 응원단 보다 먼저 상암 경기장에 도착해 진열을 정비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겨 상암 구장에 도착했다. 경기장은 이미 그늘에 가려 더욱더 추위는 매몰찼다. 전남 드래곤즈 응원단은 상암 구장 남문에 자리 잡았다. 응원단 맨 가운데는 노란색 물결의 서포터즈들이 자리를 잡으며 응원을 이끌었다. 

오후 3시. 운명의 FA 결승전.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전남 응원단 측에서 노란색 꽃종이를 뿌리며 경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전남과 수원 양측 응원단은 경기장 분위기를 압도하기 위해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응원전으로 장외 경기를 펼쳤다. 기자석에 있던 기자들도 이번 결승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면서 경기를 관전하기 시작했다.

위너 드래곤즈는 경기시작과 동시에 전남의 로고가 새겨진 보라색 대형 통천으로 서포터스석을 뒤덮으며 수원 서포터스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붉은색 홍염이 피어올랐다. 이어 황금색 꽃가루가 전남 응원석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양 팀의 팽팽한 접전에 경기장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서로 상대방 진영에 들어설 때마다 관중들의 환호와 아쉬움은 교차됐다.

또한 주심의 휘슬이 울릴 때마다 응원석 한편에선 환희를, 또 다른 편에서는 야유가 넘쳐났다. 삼성 응원단은 “심판 눈떠라”는 야유를 경기 내내 쏟아냈다.

전반전은 0-0 무승부. 결승전답게 전남과 삼성이 팽팽히 맞섰지만 6-4 정도로 전남이 주도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위는 더욱더 심해졌다.

노트북을 두드리던 기자들 역시 연신 손을 녹여가며 자판을 두드렸지만 추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후반전 시작. 전반전을 유리하게 풀어나간 전남은 후반전 초반부터 삼성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후반 11분. 드디어 운명을 결정짓는 골이 터져 나왔다. 후반 11분 중앙선 오른쪽에서 길게 찔러준 볼을 받은 전남의 박종우는 끝선을 따라 안쪽으로 치고 들어갔다. 박종우는 이후 페널티지역 밖으로 꺾어서 내줬고 달려들던 송정현이 아크 오른쪽에서 골문 오른쪽을 향해 강하게 슈팅으로 연결했다.

골이 터지자 운동장은 물론 전남 응원석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전남 응원단은 누구라도 먼저 할 것 없이 얼싸안으며 우승을 예감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파란색 물결인 삼성 응원단 측은 일시에 침묵이 흘렀다. 골이 터지자 기자들의 손길은 더욱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후, 전남은 튼튼한 조직력으로 삼성의 공격을 막아내며 두 번째 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한 골로는 승리를 준비하기에 부족함이 있었던지 전남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양 팀 응원단도 멈추지 않고 선수들을 격려하며 경기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후반전도 서서히 종반에 치달을 무렵 기자석에 있던 김종건 전남 드래곤즈 홍보팀장은 “샴페인을 준비해야겠다”며 서서히 축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경기가 막바지에 이르자 한골을 만회하기 위한 삼성의 공격은 더욱더 거셌다.

그러나 전남 역시 이에 밀리지 않고 맞대응을 펼쳤다. 후반 40분. 삼성은 고개를 떨어뜨린 반면 전남은 우승을 확정짓는 쐐기골을 작렬했다. 전남의 산드로가 오른쪽을 돌파한 뒤 크로스한 볼을 문전에서 김태수가 차 넣어 승부에 쐐기를 박은 것.

종료 휘슬이 울리자 9년 만에 우승컵을 차지한 전남은 축제를 마음껏 즐겼다. 서포터즈 회원들도 3년 전에 묻어뒀던 샴페인을 선수들에게 전달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허정무 감독은 우승 후, “경기장을 찾은 서포터즈와 응원단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응원단에게 고마움의 뜻을 나타냈다. 

이번 우승의 가장 큰 원동력은 허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 선수들의 피나는 훈련의 결과지만 그 이면에는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직접 경기장을 찾은 2천 여 명의 광양 원정 응원단과 서포터즈의 열정적인 응원도 한 몫으로 작용했다.
 
 이번 우승은 선수와 응원단, 구단의 세 박자가 모두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영하 8도의 맹추위였지만 51대의 버스 응원단이 광양으로 돌아가는 길은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찼다. 추위를 무릅쓰고 응원한 보람이 있었던 것이다. 응원단이 광양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자정 무렵이다.

오전 8시부터 밤 12시까지. 2천 여 명의 응원단은 황금 같은 휴일에 두 시간의 축구 경기를 위해 무려 15시간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응원단 중 누구 하나 그 시간이 아깝다고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선수들이 응원단의 정성에 우승으로 보답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