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후학 양성 길 열렸으면”
“고향에서 후학 양성 길 열렸으면”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5.22 09:30
  • 호수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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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궁가’ 예능보유자 남해성 향우
 
남해성(중요무형문화재 5호)향우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고향을 찾았다. 국악난장 출연을 위해서다. ‘수궁가’ 예능보유자인 남해성 향우는 우리나라 판소리의 거장으로 불린다. 그를 만났다.
“부족하지만 제가 국악계에서 잘 나간다는 사실을 아세요?(웃음)그런데 정작 고향 광양은 저를 필요치 않나봐요. 찾아 주질 않으니까요.”

지난 18일 판소리 명창 공연 ‘4인4색’ 출연을 위해 고향을 찾은 그는 본지와의 만남에서 고향에 대한 애착과 애증을 동시에 토해냈다. “어릴때 고향을 떠나 소리를 배우며 중요무형문화재가 됐습니다. 서울과 남원 등지 국악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정작 내 고향에는 한 것이 없으니 늘 마음 한 켠이 아려옵니다. 광양시가 장소 등을 제공한다면 남은 여생을 고향 후학들에게 소리를 전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멀고 또 멀게만 느껴지는 소리 예술의 길에 격려의 채찍과 더불어 이제는 칠순을 넘어 고향 후배들에게 소리를 전수하고 싶은데 광양시의  매개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해성 향우는 “광양 국악도 알고 보면 역사가 꽤 깊은 것으로 아는데 광양의 위대한 정신을 계승발전한다는 사명감으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하여 고향의 예술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명창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광양은 일찍이 옥룡사를 비롯 크고 작은 문화재가 많이 산재해 있고 컨부두와 제철소 등이 들어 선 축복의 고장이라”며 “이제는 문화와 역사 그리고 생활과 정서속에서 발현하고 성장, 지역의 애환이 정착돼 이루어진 판소리 예술의 보고(寶庫)로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고 강조했다.
남해성 향우는 1935년 진상면 청암출신으로, 어렸을때부터 재주가 비상하고 성음도 타고난 천수의 예술가로 10대때 서울로 상경해 여러 여성 국극단을 거쳐 국립창극단 생활을 하게 됐다.
 
김소희 선생으로부터 춘향가를 시사 하고 박초월 선생께 수궁가를 시사 해 수궁가로 81년 중요무형문화재 5호 보유자 후보로 지정되었다. 남해성 명창은 젊은 시절 창극배우로 이름을 떨쳤고 특히 <수궁가>의 토끼 역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도로 명연기를 펼쳤다. 김소희, 김연수, 박초월을 사사했는데, 특히 박초월제 <수궁가>를 잘 부르고 칠순이 넘었음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고음을 잘 내고 힘이 있는 소리를 구사하는 명창이다.

‘박초월(1916 ~ 1984)제 수궁가’는 보통 여자 성음으로는 하기 힘든 하성으로 뚝 떨어뜨렸다가 금방 상성으로 찔러 올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흔히‘상성을 치솟아 뚫는다’는 평을 받아 왔다.
그림을 그리듯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명창으로 알려진 남해성 향우는 지난 1985년 남원 춘향제에서 판소리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해 명창 반열에 올랐으며, 1994년 KBS 국악대상에서 판소리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한평생을 우리 소리로만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그러나 정작 고향에서는 그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전북 남원시는 광양 출신인 그를 국보로 예우하고 있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중근 남원시장은 중요무형문화재 5호인 우리나라 국보가 남원에서 후학들을 양성해 주는 것에 대해 최고 예우를 아끼지 않는다.
국악계의 거장이자 인간문화재인 그가 고향을 두 번씩이나 다녀가도 그저 출연진으로 여기고 있는 광양시가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