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으로 자부심 가득했던 38년"
"공무원으로 자부심 가득했던 38년"
  • 이성훈
  • 승인 2008.12.24 20:33
  • 호수 2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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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공직생활 마감하는 박희순 광양시청 회계과장

▲ 박희순 광양시청 회계과장
“책상 앞에서 두 시간을 넘게 펜을 들고 앉아 있지만 지나간 세월은 잡힐 듯 말 듯 아지랑이처럼 스치고 지나갈 뿐 어떠한 단어, 문구, 문장으로도 단정 짓을 수 없이 내 머리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그려져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퇴임을 일주일 여 앞둔 박희순(60) 광양시청 회계과장은 마음이 착잡하다. 화살처럼 빠른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고 40여년 가까이 공직에서 생활했다는 것이 꿈만 같다. 그는 직원들에게 때로는 호랑이 선생님처럼 엄하고 원리 원칙적이지만 누나, 이모처럼 따뜻한 품성으로 직원들을 다독여주며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38년의 공직 생활을 마치는 박 과장은 지난 1970년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 옥룡면사무소를 시작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그는 광양시 여성 공채 1호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그는 첫 발령을 받은 후 9년이 넘어 서기로 승진한다. 박 과장은 “우리나라는 88 올림픽 개최 후 여성공무원의 지위도 나아져 주사로 승진했으나 당시만 해도 여성 주사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박 과장은 공직 생활의 절반 이상을 민원 부서에 근무한 덕택에 지난 2002년 민원봉사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2003년 포스코가 발주한 345KV 송전탑 설치 공사로 인해 집단민원이 심각했던 광영동에 동장으로 부임해 5년 동안 극명하게 대립됐던 민원을 해결하기도 했다.

박 과장은 “지금 생각해보면 부족한 나에게 정부에서 민원봉사 대상을 수여해 시민의 입장에서 민원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준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숨 가쁘게 살아온 공직생활 38년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것 같아 좀 더 잘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고 후회한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광양시 공무원임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며 “늘 공무원임이 자랑스러웠다”고 자부했다. 

현재 틈틈이 외국어 공부에도 열심인 그는 후배들로부터 “제발 공부 좀 그만 하라며” 핀잔(?)을 듣기도 한다. 박 과장은 “후배들이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하지만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며 틈만 나면 외국어 공부를 통해 시각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 특히 여성 후배들에게 충고도 잊지 않았다. 광양시 공무원 여성 최초로 행정직 사무관에 승진해 퇴임을 앞둔 그는 “지금은 우리사회에서 남녀평등이 어느 정도 정착되어 있다”며 “여성 후배들은 이럴수록 남성들보다 더욱더 열심히 일해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공무원은 신분이 보장된 만큼 근검, 절약을 생활화하고 성실히 근무해 시민들로부터 더욱더 사랑받는 후배들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 과장은 퇴임 후의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정형화된 틀에 박혀 살아왔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국문학을 전공한 문학도로서 끼를 살려 세상 밖으로 표출해 보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여행도 하고 도서관이나 박물관 같은 곳에서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지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항상 바쁘다는 이유로 나 자신은 물론 가족,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왔다”며 “이제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아프거나 희노애락을 함께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 약자를 돕고 배려해 주며 나의 강점을 악용해 상대를 보거나 이용하지 않는,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더욱 약하게 대해 줄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며 “공직 생활 하면서 많은 도움을 준 동료 선후배,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