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모 선생 정신 담은 ‘동신대 영상박물관’
이경모 선생 정신 담은 ‘동신대 영상박물관’
  • 최인철
  • 승인 2009.03.11 20:10
  • 호수 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신대학교 영상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카메라 박물관이다. 1996년 사진영상학과 객원교수로 재직했던 이경모 선생이 평생을 걸쳐 수집한 1500여 점의 카메라를 기증하면서 조성된 곳이다. 상설전시장 형태로 꾸며진 박물관에는 선생이 기증한 카메라와 그가 생전 직접 선정한 사진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당초 이경모 선생은 전시관 건립을 조건으로 이들 카메라와 사진작품을 고향인 광양시에 기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기증의사를 밝힌 1995년 당시 시는 안타깝게도 예산확보가 어렵다는 이유을 들어 지원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여 무산됐고 이후 선생이 동신대의 객원교수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동신대 영상박물관이 태동하게 됐다. 차정환 교수는 “선생님은 사진을 상업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을 반대하셨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사진박물관을 제안했지만 거절하셨다”며 “고향인 광양으로 가야 된다는 입버릇처럼 말씀 하셨으나 당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무산된 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셨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평생 수집한 1500여 점의 카메라 기증으로 설립

동신대 영상박물관은 이경모 선생을 떠올리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 곳이다. 선생이 없었다면 영상박물관은 설립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앙도서관 5층에 마련돼 있는 영상박물관은 선생의 기증품은 물론 선생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전시실 안쪽으로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면 프랑스에서 제작한 세계 최초의 다게레오 타입 카메라 1/5 축소모형과 1903~1940년대에 사용됐던 폴딩카메라(렌즈와 몸체 사이가 주름상자로 접혀지는 카메라)가 독립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폴딩카메라와 나란히 전시된 오래된 영사기, 확대기들을 둘러본 뒤 고개를 돌리면 3면의 벽면에 세워진 수십 개의 카메라 부스에 있는 다양한 카메라들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1930년대에 사용됐던 일본제 미놀타 오토프레스부터 1940년대의 일본 미뉴트, 1950년대 독일 제이스, 1960년대 미국 코닥 등 연대별 카메라의 변천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또한 1960~1970년대의 즉석카메라는 물론, 1970~1980년대 중국제 카메라 해구, 북한제 학무정, 구 소련제 콘탁스 등과 우리나라 제품인 삼성카메라까지 시선을 뗄 수 없는 카메라의 세계가 펼쳐진다. 종류별로는 1900년 초부터 1930년 걸쳐 제조된 목제 폴딩카메라, 초점렌즈와 촬영렌즈가 분리된 이안 리플렉스외 일안 리플렉스, 수중, 항공, 스테레오 카메라 등 특수 카메라가 전시돼 카메라의 역사와 종류별 특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수집한 카메라에 대한 애착 남달라

이들 모두 선생의 손때가 묻은 소중한 것들이다. 선생은 카메라를 수집한 후 하나하나 분리해 부품 교체 등을 통해 당장 사용이 가능한 카메라로 복원하는 등 모든 애정을 쏟아왔다는 게 후배사진작가들의 증언이다.

한국사진선교센터 신윤식 회장은 “동신대에 기증된카메라는 선생님이 직접 수집해 다시 복원한 것들로 기증 당시에도 90% 이상의 카메라가 당장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잘 보관돼 왔다”며 “카메라에 대한 선생님의 정성은 대단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카메라와 함께 상설 전시되고 있는 사진작품은 고 이경모 교수가 1948년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종군하며 촬영한 기록사진을 비롯해 고향인 광양을 무대로 한 흑백풍경사진과 사계의 아름다움을 담은 칼라사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시대별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보도사진 외에 한국의 풍경과 문화재 사진작품들은 예술적 영역에서 선생이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이들 작품 가운데 1957년 찍은 경주 석굴암본존불시리즈나 1959년 카메라에 담은 충남서산마애삼존불 등 문화재 사진들은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각료의 해외순방길에 한국을 소개하는 자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유당공원 등 고향에 애정 담은 작품들

그러나 선생의 문화재 사진작품들은 현재 그 자체가 귀중한 문화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에 대한 각종 보호시설로 인해 더 이상 문화재의 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선생의 서라벌예술대학 교수시절 제자인 동신대 사진학과 차정환 교수는 “선생님이 보도사진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문화재와 한국 자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며 “특히 석굴암의 아침염불이나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 마애삼존불 사진 등은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에서 찍은 사진들로 지금은 여러 가지 여건 상 찍을 수 없는 사진들”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된 사진작품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농촌스케치나 유당공원을 소재로 한 사진들이다. 선생은 자신이 선정한 사진들 가운데 광양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을 따로 선정했다.

이들 사진 가운데 46년 12월경 담은 광양옥곡 초가마을이나 광양읍 마산리 외나무다리 등 당시 농촌 풍경을 담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격동기를 겪던 정국에서도 고향을 바라보는 선생의 따뜻한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유당공원을 소재로 한 사진들은 그 같은 선생의 마음을 더 짙게 담고 있다.

중앙대 사진학과 한정식 교수는 동신대 문화박물관 소장 이경모 흑백사진집 발문에서 이를 명확히 지적했다. 그는 “농촌스케치나 유당공원 사진들은 예술영역의 사진들로 1945년을 전후한 당시 예술로서의 사진의 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며 “그 사진들에 묻은 시간의 흔적을 맛볼 수 있어 즐겁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같은 고향사진들에 깃든 서정성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며 “그 사진들에 묻어나는 시간의 흔적이 실은 예술적 가치와 향기를 동시에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