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민원에 끌려가는 행정, 더 이상 안 된다
집단민원에 끌려가는 행정, 더 이상 안 된다
  • 최인철
  • 승인 2009.06.04 15:14
  • 호수 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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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읍사무소 기습점거를 보는 단상

옛 읍사무소가 침탈당했다. 19일째다. 오랜 갈등 끝에 합일점을 찾았던 옛 읍사무소 활용방안에 대해 여전히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몇몇 주민에 의해서다. 장시간 논의 끝에 도달한 합의에도 이 역시 내 주장과 다르다는 이유로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부 주민들이 또다시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최근 철거를 주장해 오던 주민들의 의사단체인 원도심활성화시민연대와 보존을 주장하는 시민단체 대표, 시와 시의회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보존활용과 주변부지 확대매입을 통한 공원조성이라는 합의점에 도달했다. 주민과의 충분한 협의와 토론, 적정한 타협을 통해 갈등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다.

그러나 이번 기습점거로 대화를 통해 절충점을 찾고자 하는 대타협의 노력은 철저히 무시됐다. 내 뜻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방안으로 보는 전형적인 '우기기'요, 민주적 절차를 깡그리 무시한 유아적인 ‘떼쓰기’ 행태다. 지독한 독선이자 아집이 아닐 수 없다.

민원은 주민들이 행정기관에 어떠한 것을 수용해 달라고 요구하는 행위다. 집단민원은 개인이 아닌 2명 이상의 주민들이 집단적인 민원을 제기하는 행태다. 민원이 권리에 대한 부당한 침해나 개선방안을 피력하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어느 집단이든 사회적 발전에 따른 이해관계의 충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같은 민원을 합리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상호간 대화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절충점을 찾지 못할 경우 최종적으로 법에 근거해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민원인들이 강력히 항의하면 자치단체가 부당한 희생을 껴안는게 당연시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적 시민의식의 부재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이 시정운영의 주체가 되는 민주시민사회를 희구하면서도, 정작 가치체계는 아직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주체적인 시민의식은 아직도 미숙하다.

옛 읍사무소를 기습 점거한 이들 주민은 건물 외벽 곳곳에 항의의 뜻을 담은 낙서를 하는 등 공공재산을 훼손하는 행위도 발생했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더 심각한 파괴와 훼손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법치파괴는 결국 시민 스스로 자유와 권리를 실종시키는 악순환의 연속을 가져온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시의 행정은 원칙과 절차가 생명이다. 탄력적이되 분명한 원칙에 입각해 일을 처리해야 한다. 또한 집단적 민원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물리적 힘에 의해 물러나거나 행정적 방임은 불법적인 민원의 힘을 더욱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