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교육에서 지식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Ⅰ)
숫자교육에서 지식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Ⅰ)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15:50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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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신 / 한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또 어린것이. 교육이 문제야. ‘학교 성적이 떨어져 고민이다’라는 내용이 적힌 종이가 이군의 가방과 함께 발견됐다는 뉴스이다. 하물며 한 과목에서 2개씩이나 틀렸다고 자살을 한다.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아마 2개 맞은 아이는 절대로 2개 맞았다고 자살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교조가 전국 초중고생 2,353명을 대상으로 [학생 건강상태와 의식조사]를 했는데, 청소년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로 ‘성적비관’이 19.9%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으로 나왔으며, 이어 ‘친구관계’가 12.5%, ‘부모님의 훈계’가 9.9%순으로 나왔다.

생명과 바꿀 수 있을 만큼 학생들에게 성적이 인생의 전부로 보인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얼마나 편협된 사고 인가. 이는 다양성 부재로 사고의 경직과 함께 창의성발휘를 저해 한다. 창의사회에서 창의력이 매우 매우 중요하다고 사회에서는 야단 법석이다. 수요자 욕구와 공급자 능력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이 잘 못된 것일까. 지식위주의 교육이 아닌 경쟁위주의 교육 때문이다.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해법을 내 놓을 수 없다. 우리 나라 교육문제는 제도의 변경으로만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왜! 혈연주의와 미래 성공주의가 매우 강할 뿐만 아니라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고 똑똑해지려는 사람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의식과 시각의 전환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제도의 변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의식과 시각의 전환에 대해 재아무리 외쳐 봐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지만, 그냥 외쳐본다.  제도만 가지고 해결하려고 한 것 모두 실패다. 제도를 따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제도를 교묘히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하게 된다. 교육정책, 부동산정책, 노동정책... 오늘날 현자(現者)가 많은 것 같다. 이들은 머리를 쥐어짜며, 대안을 제시하려는 사람보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한 사람들이다.

그 정책이 실패하면 자신의 주장이 맞은 것이요, 정책이 성공하면 자신은 조용히 있으면 된다. 아예 다른 일로 분주하게 다니면 된다. 이들은 숫자교육을 받은 우수한 現者들이다. 하나의 정책이 성공하려면 관련자 모두가 머리 맞대고 노력을 해도 국제 경쟁사회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현자(賢者)는 만인을 위해 좋은 의견을 내 놓으며, 좋은 결과가 이루어지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小보다는 大를 선택한다.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많은 정책들이 국가보다는 정당이 우선된 것 같아 아쉽다. 現者가 賢者가 되었으면 한다.      

숫자교육이 몸에 젖어 있게 되면 비효과적이고 비경제적인 일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젠 가능한 불필요한 노력은 그만 두자. 지난날 IMF가 터지자 회사가 망해 실업자가 된 어느 대기업 임원이 TV인터뷰에서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날 출근을 하는데 거리가 한산하더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날이 빨간 글씨였다는 것이다. 야! 휴일인지도 모를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는데 그런 회사가 망하다니.

또한 대기업이면 우수한 인재도 많았을 것인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유능한 인재들이 불필요한 일들에 너무 많은 시간들을 소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승진을 위해 상사의 눈치나 사장의 눈치를 보면서, 무에서 유를 창출하려는 노력보다는 과오를 범하지 않고 시키는 일만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눈치없이 일하다간 퇴직자가 되기 쉽다.

이는 사장이 임금을 준다고 생각하고 사장도 자신이 임금을 준다고 생각한데서 시작된 것 같다. 임금은 사장이 주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고객들이 준다는 사실을 모두 망각하고 있다. 사장은 단지 전달자이다. 고객의 눈치를 봐야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교육의 고객은 학생일까, 학부모일까? 학부모가 구매자고 학생은 구매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용자이다. 하지만 교육은 구매자가 고객일 순 없다. 사용자가 고객이 되어야 한다. 이는 사용자의 인생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주체자가 재 정의되어야 한다.

요즘 교육의 주체자는 학부모인 것 같다. 자녀도, 교사도, 교육부도 학부모의 목소리에 꼼짝 못한다. 학부모들의 교육관을 바꾸어야 한다. 관여자가 아니라 지원자가 되어야 한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능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자신의 적성을 몰라 사회가 원하는 고교나 대학, 돈을 많이 버는 전공, 안전한 직업인 교대를 선택한다.
 

입력 : 2006년 06월 14일